즉시 천천히

날짜: 
2026/06/06
말씀: 
약1:19
말씀구절: 

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설교: 

묻고 싶습니다. 어떤 단어가 더 마음에 드시나요? ‘즉시’라는 단어입니까? ‘천천히’라는 단어입니까? 뭐- 사람마다 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라마다 다를 수도 있고요, 또 상황에 따라서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즉시’라는 단어를 더 선호합니다.

한국인에게 있어서 ‘즉시’는 생존 전략 그 자체였습니다. 6.25 전쟁의 폐허 속에서 ‘천천히’ 했다면 지금의 경제 성장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한국은 식당에 앉자마자 음식이 나오고, 인터넷 설치도 당일이며, 행정 처리도 빛의 속도입니다. 이 ‘즉시성’은 한국을 세계 최고의 IT 강국, 효율의 국가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즉시(빨리)’만 강조하다 보니 과정의 ‘철저함’이 부족하거나, 기다리지 못해 조급해하며, 화를 잘 내는 단점도 생겼습니다. 반면 서양, 특히 우리가 사는 여기 캐나다 같은 나라는 ‘천천히’와 ‘기다림’이 삶의 기본입니다. 캐나다에서는 서류 하나 떼는 데 몇 주가 걸리고, 인터넷 설치도 몇 주가 걸리는 일이 허다합니다. 병원 응급실에서의 기다림은 기가 막힌 수준입니다.

한국 사람의 눈에는 참으로 속이 터질 일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공정한 절차와 근로자의 휴식권을 지키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서두르지 않기에 실수가 적고, 지금 당장보다는 함께 멀리 가는 가치를 중시합니다. 남을 배려하며 줄을 서고 기다리는 여유가 시민의식의 밑바탕입니다.

그러나 너무 ‘천천히’ 하느라 위기 대처 능력이 떨어지거나, 변화에 둔감한 측면이 있습니다. 요즘 사회는 속도가 곧 개인과 국가의 경쟁력인데 캐나다도 좀 빨라져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이를 종합하면 신속하게 결정하고 추진하는 한국의 장점과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려는 캐나다의 장점이 같이 어우러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빨리 일을 처리하면서도 완벽하게 일을 성취하면 최선이겠지요. 반면 느리게 하면서 일도 제대로 안 되면 그건 최악일 겁니다. 그런데 이런 면이 있습니다. 내가 남에게 요구하는 것은 상대방이 ‘즉시(빨리)’ 해주길 원하지만, 남이 나에게 빨리(즉시) 해달라고 하면 괜히 푸시는 당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안 좋습니다.

특히 나는 급해서 ”그게 언제 되느냐? (When will that be done?)“라고 물으면, 여기 캐나다 사람들에게 자주 듣는 대답이 있습니다. 그게 뭐지요? ”기다려(Wait)!”라는 대답입니다. 아- 성질 급한 한국 사람들은 이때 절실히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지요? “아- 그래. 여기는 캐나다지!“

성경에 보면 주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실 때에 ‘즉시’ ‘곧’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실 때, 베드로와 안드레는 그물을 버려두고 즉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또한 야고보와 요한은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즉시 주님을 따랐습니다. 만약 그들이 즉시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그들이 자신을 따를 때까지 예수님이 마냥 일 년이고 이 년이고 기다렸을까요?

이에 대한 대답이 마태복음 8장에 나옵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께 고백합니다.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그러나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이때 주님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마8:21)

결국 즉시 주님을 따르지 못했던 이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즉 은혜에는 유효기간이 있고, 순종에는 타이밍이 있는데, 그는 ‘즉시’라는 타임을 맞추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는 비단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우리들도 주님의 부름에 종종 ‘나중에’ ‘천천히’라고 말하며 그 기회를 무산시킬 때가 있다는 겁니다.

물론 성경에 나온 이 사람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나름대로 이런저런 이유가 있을 겁니다. “주님, 집안 문제부터 해결하고 오겠습니다.” “돈 좀 벌어놓고 오겠습니다.” “애들 다 키워놓고 난 후 여유가 생기면 올게요.” “상황이 좀 좋아지면 그때 할게요.” “요즘은 날씨가 안 좋으니 날씨가 좋아지면 오겠습니다.” “아직은 주님을 따르기 너무 젊으니까 세상 좀 즐기다가 나이를 먹고 천천히 오겠습니다.”

즉 우리가 ‘즉시‘ 주님을 따를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나 자신이 우선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주님의 그때 그 부르심이 가장 좋은 타임이란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 부교역자로 있으면서 절실히 느낀 것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인사발령이 나면 즉시 움직여야 한다는 겁니다.

만약 발령이 났는데도 즉시 실행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발령이 나고 맙니다. 그러면 나는 공중에 붕- 뜨고 마는 겁니다. 그러니까 순복음 교회는 ‘즉시’라는 시스템이 잘 작동합니다. 제가 28년 전, 여기 캘거리에 올 때도 그랬습니다. 당시 캘거리에 아직 순복음 교회도 없었고, 내가 개척하러 가는 거니까 좀 여유를 부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제 가족들과 여기에 같이 오지도 못하고, 급히 혼자서 부랴부랴 비행기를 타고 이곳에 와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야만 이곳에 교회가 세워지는데 차질이 없게 되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그렇게 즉시 이곳에 오기가 매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만 하나님이 저를 그렇게 즉시 가라고 하셨습니다.

어찌 보면 그렇게 ‘즉시’ 순종을 요구하시는 주님이 당시에는 심히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보니까 “아- 그때 즉시 순종하길 잘했다.”라는 깨달음이 옵니다. 여러분, 주님이 우리에게 즉시 순종을 요구하실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특히 생명의 부르심 앞에는 지체함이 없어야 합니다. 세상적인 일을 하느라 주님의 ‘즉시’ 타이밍을 놓치는 것은 ‘신중함’이 아니라 또 다른 ‘불순종’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우리가 천천히 나중에 하지 말고 즉시 하라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신의 허물과 죄를 회개하는 일은 가장 빠르게 신속히 즉시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 일들, 예를 들면 형제와 화해하는 것, 전도하는 것, 기도하는 것, 예배드리는 것은 나중에 천천히 하지 말고 가장 먼저 즉시 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편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주님, 주님은 저에게 즉시 순종을 요구하시면서, 왜 주님은 제 기도에 즉시 응답하지 않으십니까? 이건 언훼어(Unfair) 불공정하지 않습니까?“ 이런 질문에 대해 주님이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애야, 그건 내 마음대로란다.”라고 말씀하실까요? 만약 그렇다면 우리도 주님이 명령하실 때 “아- 주님, 좀 기다리세요.”라고 말대꾸하며 천천히 해도 되지 않을까요?

이에 대한 대답을 예화로 알려드립니다. 직장에서 사장님이 직원인 여러분에게 “이것을 하십시오.”라고 지시할 때, 당신은 어떻게 처신합니까? “사장님, 애들처럼 서두르지 말고 좀 기다리세요. 시간 되면 천천히 해드릴게요.”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결국 그 회사에 더는 있지 못하게 될 겁니다.

즉 상사가 나에게 지시하고 명령하는 것은 가능한 한 즉시 해야 합니다. 더구나 우리 모든 인간보다 한참 높으신 창조주 하나님이 때가 되어서 피조물인 나에게 중요한 것을 지시하는데 “아- 하나님! 이따 시간 되면 천천히 해드릴게요.”라고 하면 그는 하나님을 얕잡아보는 아주 큰 불경죄를 범하는 겁니다.

더구나 이때 말대꾸를 하면서 “아- 하나님도 제가 이전에 무엇을 부탁했을 때 아주 천천히 해주었잖아요. 그때 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세요?”라고 대답한다면 하나님이 뭐라고 하실까요? “애야, 너 참 기억력이 좋구나. 너 참 좋은 학교 나왔구나.”라고 칭찬하실까요? 아니면 “어라. 너 많이 컸구나.”라고 황당해하지 않으실까요?

그리고 하나님이 속으로 “야- 저 녀석! 되게 맹랑하구나. 쉽게 상대하기 힘들겠구나.” 하시며 조금 멀리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나님이 나를 멀리하시면 누가 더 손해입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알아야 하고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이나 상대방이 나에게 무엇을 요구할 때에는 성실하게 ‘즉시’를 적용해야 합니다.

반면 남이 내가 부탁한 것을 즉시 해주지 않고 천천히 해줄 때는 당장 화를 내지 말고, “아- 여기는 캐나다구나! 그래, 좀 더 기다려야지.” 하고 좀 더 인내해야 합니다. 그래야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이것을 거꾸로 적용합니다. 자신은 남에게 즉시 서비스를 받아야 하고, 자신은 남에게 아주 천천히 서비스를 해주려고 합니다.

어떤 때는 남을 아주 대놓고 무시하며 마냥 기다리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계가 틀어지고, 세상이 자꾸 험악해지고, 살기가 뻑뻑해지고 힘들어지는 겁니다. 그리고 잊지 마십시오. ‘즉시’와 ‘천천히’의 타임을 가장 잘 아시고 맞추시는 분은 전지전능하신 우리 하나님입니다.

고로 우리가 하나님께 즉시 응답을 못 받아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즉 내가 해야 할 도리는 ‘즉시’ 성실히 다 하고 난 후, 그 결과의 주권을 주님께 맡기고 기다려야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내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렸다고 해서 내일 즉시 열매를 따려고 하는 것은 신앙이 아니라 욕심입니다.

전도서 기자인 솔로몬은 말합니다. “네 떡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찾으리라.”(전11:1) 즉 떡을 물 위에 던지면 내 손에서 당장 사라지는 손해 같지만, 망설이지 말고 즉시 선을 행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행한 선이 결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농부가 씨를 심고 난 후 싹이 빨리 안 나온다고 흙을 파헤치는 서두름은 불신앙입니다. 고로 우리는 즉시즉시 선을 베풀지만, 그 결과는 끈기 있게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의 ‘천천히’는 거절이 아니라 가장 좋은 것을 주시려는 준비과정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말씀합니다. “사람마다 듣기는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약1:19)

즉 입 밖으로 내뱉는 말은 한 번 나가면 주워 담을 수 없기에, 즉시 내뱉지 말고 한 번 더 생각하며 천천히 말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감정이 격해지고 화가 치밀어 오를 때 즉시 말을 하면 사고가 나고 싸움이 납니다. 이때는 분노가 가라앉기까지 말하는 것을 가능한 한 천천히 해야 합니다.

결론입니다. 내가 할 일(착한 일, 의무, 순종, 화목, 사랑, 실천, 전도, 기도, 감사)은 ‘즉시’ 하십시오. 그러나 그 결과와 보상에 대해서는 절대로 서두르지 마십시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나를 이토록 사랑하셔서 이미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이 나를 위해 무엇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아무쪼록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안에서 즉시와 천천히를 잘 구별하고 행하심으로 계속 행복하시고 평안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때로는 주님의 부르심에 우리가 너무 나태하고 천천히 반응한 것을 회개합니다. 앞으로는 주님의 부르심에 즉시 응답하며 성실하게 하시옵소서. 또한 기다려야 할 때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힘을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