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한 젊은 등산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체력도 좋고, 경험도 조금 있었지만, 산을 ‘단순한 운동’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주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높은 산, 눈과 바람, 험한 절벽으로 가득한 산에 도전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산은 쉽지 않다. 조심하라.”라며 경고했지만, 그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첫날, 그는 산을 오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에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잖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산은 그의 자신감을 조롱했습니다. 폭우가 갑자기 몰아치고, 미끄러운 바윗길에 몇 번이나 넘어졌습니다. 챙겨온 음식과 물은 줄어들고, 몸은 지치고 손과 발이 얼어갔습니다. 그제야 그는 깨달았습니다. “아- 산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하고, 만만하지 않구나.”
그는 거대한 산과 자연 앞에서 겸손해졌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산을 오르는 지혜를 배우고, 한 걸음 한 걸음 조심히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가 저의 힘만 믿고 이제까지 왔습니다. 이제는 주님의 도움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그리고 결국 그는 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그동안의 고생보다 훨씬 값졌습니다.
또 다른 등산 이야기입니다. 이전에 일어났던 실제 사고 이야기입니다. 1996년(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에베레스트 등정 시즌, 여러 원정대가 한꺼번에 정상에 도전했습니다. 날씨가 아주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상 바로 아래 ‘데스 존(death zone : 죽음의 구역)’이라 불리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산소가 극히 낮은 구간인데, 거기에 원정대들이 머물던 중, 일기 예보에도 없던, 전혀 예기치 못한 거대한 폭풍이 그들을 덮쳤습니다. 갑자기 몰아닥친 그 폭풍으로 인해 총 8명의 등반가가 목숨을 잃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조차 극심한 고통과 두려움을 겪었습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는 단순한 일반인들의 산악 사고가 아닙니다. 철저한 준비와 장비를 갖추고, 수년간의 고된 훈련과 철인 같은 체력을 가진 프로들조차 자연의 힘과 현실 앞에서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건입니다. 이들은 각자 목표를 향해 모든 걸 쏟아부었지만, 산의 조건은 그들의 기대보다 훨씬 강하고 예측 불가능했습니다.
여러분, 동물의 왕 사자는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왜 그렇지요? 사자가 사냥할 때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더 이상 사자가 아닙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비록 사자라도 약한 토끼조차 잡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동물의 세계에는 만만한 상대가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이 말을 우리가 사는 세상에 적용해봅시다. 사람이 사는 이 세상도 동물의 왕국 못지않게 터프합니다. 극심한 경쟁이 있고, 교활한 유혹이 있고, 각종 시련과 문제가 있고, 나를 쓰러트리려고 하는 세력도 있습니다. 살기 좋다고 하는 이곳 캐나다 역시 살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단지 요즘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살기가 어렵다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28년간 살아보니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아- 이곳도 만만한 곳이 아니구나.” 제가 여기 캐나다 캘거리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남성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이민 오신지 꽤 오래된 분입니다. 그분은 직업상 많은 사람을 만나는 분입니다. 그분이 그때 저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는데, 그 말을 정말 지금까지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무슨 말일까요? 바로 이 말입니다. “목사님, 이곳에는 만만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곳에서 살아보니까 진짜 그렇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순하고, 만만하고, 쉽게 보여도, 나중에 알고 보고, 겪어보니 그 사람도 대단한 사람입니다. 즉 쉬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적어도 여기는 그렇습니다.
더구나 말세가 되면 될수록 세상은 더욱 힘들어지고, 사람들도 더욱 힘들어집니다. 더구나 이곳 외국 땅에서 살다 보면 자신의 무능함과 함께 “내가 그리 잘난 사람이 아니구나.” 하는 깨달음이 저절로 옵니다. 때로는 그런 깨달음이 나를 낙심시키기도 하지만, 하여간 겸손해지는 데는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오늘의 설교 제목인 “세상을 너무 쉽게 보지 마라”는 뜻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세상은 넓고 괴물은 많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 좀 더 어려운 사자성어로 하면 이렇습니다. 능수능외(能手能外) : 능한 솜씨 위에 또 능한 솜씨가 있다는 뜻입니다.
천외유천 (天外有天) : 하늘 밖에 또 하늘이 있다는 뜻입니다. 즉 세계는 끝이 없으며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끝없이 존재함을 이르는 말입니다. 인외유인(人外有人) : 사람 밖에 또 사람이 있다는 뜻입니다. 세상에는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많으니 겸손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글들이 가지는 공통점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1. 겸손의 필요성 : 자신이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거나 통제할 수 있다고 믿을 때 큰 실수가 발생합니다. 세상은 한 개인이 파악하기에는 훨씬 더 거대하고 정교합니다.
2. 준비의 중요성 : 겉보기에 쉬워 보이는 일도 막상 실행에 옮기면 수많은 난관이 따릅니다. 철저한 준비와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낙관은 자칫 위험할 수 있습니다.
3. 인과관계의 복합성 : 세상은 단순히 “A를 하면 B가 나온다.”라는 공식대로 흐르지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욕망과 우연과 필연이 복잡하게 얽혀 있으므로 항상 신중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4. 타인에 대한 존중 : 세상을 쉽게 본다는 것은 그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타인들의 노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즉 타인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의 설교 제목인 ”세상을 너무 쉽게 보지 마라.“라는 뜻은 “세상은 살기가 어려우니까 포기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더욱 겸손하고, 더욱 신중하게 준비하며 나아가라.”는 응원의 메시지입니다. 특히 이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저의 중심 의도는 세상은 절대 만만하지 않으니 반드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라는 겁니다.
오늘의 본문은 말씀합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여러분, 평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들이 평안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들에게 분명한 사실을 말해줍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한다.” 도대체 우리가 세상에서, 이곳 캐나다 땅에서 어떤 환난을 당할까요? 사람마다 각각 다르겠지만 하여간 많은 환난을 당합니다. 매우 어려운 환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세상이 살기가 만만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그런 세상 속에 사는 우리가 모두 불행하게 산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고 살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겪는 환난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이 세상을 결코 가볍게 보지 말라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하나님의 창조질서 안에 있으나, 동시에 타락한 구조를 가진 공간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임금은 마귀 사단입니다.
사단은 이전에 하늘나라에서 천사 1/3을 미혹하고 하나님에게도 반역까지 했던 녀석입니다. 만만치 않습니다. 또한 예수님조차 쓰러트리려고 덤볐던 녀석입니다. 즉 사단이 지배하고 있는 이 세상은 결코 만만하지 않습니다. 사단은 인류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를 쓰러트리고, 그 결과 그의 자손들인 전 인류를 모두 불행으로 빠트린 녀석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사단은 우는 사자와 같이 우리들을 삼키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사단과 세상을 두려워하며 나약해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힘으로는 도저히 사단을 이길 수 없으니 사단의 머리를 깨트린 예수님의 힘으로 그를 이기라는 겁니다. 여러분, 세상을 너무 쉽게 보면 교만해져서 무너지고, 세상을 너무 두려워하면 믿음이 사라지고 맙니다.
고로 “세상을 얕잡아보지 말고, 그러나 두려워하지도 말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건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사단과 세상을 이기신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즉 이미 승리하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힘으로 세상과 마귀를 이기라는 겁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요일5:4-5)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요일4:4)
여러분, 성경에는 예수님이 이 세상을 어떻게 이기셨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분은 가장 높은 분이지만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겸손으로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지만 가장 천한 종으로 오셔서 백성들을 친히 섬김으로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그분은 자기의 생명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기까지 희생하심으로 저와 여러분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정의로 인해 부활하심으로 마귀의 머리를 깨트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이기기 위해 이런저런 권모술수를 쓰지 않았습니다. 마귀를 이기기 위해 잔꾀를 부리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기를 치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진리로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세상에는 나보다 고수가 많습니다. 나보다 잘난 사람도 많고, 나보다 똑똑한 사람도 많고, 나보다 강한 사람도 항상 있습니다. 고로 세상을 너무 호락호락하게 보지 마십시오. 그 사람을 너무 얕잡아 보지 마십시오.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진리로, 희생으로, 겸손으로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을 나약하다고 하고, 그를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그런 예수님에게 세상의 권세와 함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주셨습니다.
어찌 보면 주먹을 쓰고, 칼을 쓰는 자가 세상을 이기는 것 같지만, 성경은 최후의 승자는 예수님 안에서 진리와 정의를 좇고, 겸손의 자리에서 섬기는 자가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고 합니다. 여러분, 자고로 성도는 거짓으로 인생을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거짓을 좇아 인생을 살면 그건 이미 세상과 마귀에게 지고 있는 겁니다.
이런 명언이 있습니다. “거짓은 순간을 살고, 진실은 평생을 산다.” “거짓은 빠르지만, 정직은 끝까지 간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인생은 속일 수 없다.” 여러분, 사람이 이 세상을 너무 쉽게 보고 거짓으로 인생을 살면 결국 그에 따른 쓰디쓴 열매를 자신이 먹게 됩니다.
그러므로 남이 안 본다고 괜히 죄짓지 마십시오. 이미 죄를 지었다면 빨리 그 죄를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다시는 죄짓지 않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하십시오.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세상을 얕보는 순간, 세상은 시험지가 되고 맙니다.” 혹시 그로 인해 인생의 시험이 다가왔다면 다른 사람 원망하지 말고,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께 나아가 그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십시오.
결론입니다. 당신이 과연 예수님의 영을 받았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처럼 진리와 정의와 희생과 겸손으로 세상을 이기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이 주시는 진정한 평안을 누리십시오. 그 평안을 죽어서도 영원히 누리십시오. 그리고 여기 이 외국 땅 캐나다에서도 주님과 함께, 주님 안에서 그 평안을 더욱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에게 세상을 이기며 사는 믿음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예수님을 본받아 살게 하시옵소서. 그래서 계속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며, 세상 속에서 승리를 외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