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6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7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지금으로부터 90년 전, 1935년 위대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을 밤잠 설치게 했던 기괴한 실험이 하나 있습니다. 실험실에서 하나의 입자를 둘로 쪼개어 하나는 이곳에 두고, 나머지 하나는 6,000km 떨어진 먼 곳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곳 실험실에 있는 입자를 시계 방향으로 돌렸더니, 6,000km 킬로미터 떨어진 그곳의 입자가 ‘그 즉시’ 단 0.0001초의 오차도 없이 시계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둘의 중간에 어떤 전선도, 신호도 없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 현상을 보고 너무나 놀라며 ‘유령 같은 원격 작용’이라며 경악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현대 물리학의 기둥인 ‘양자얽힘(Quantum Entanglement)’입니다. 그런데 과학자들이 ‘유령 같다’라며 당황했던 이 현상을 이미 2000년 전에 일상처럼 사용하셨던 분이 계십니다.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가나’라는 동네에 계셨지만, 30km 떨어진 ‘가버나움’ 동네에 있는 한 죽어가는 아이를 말씀 한마디로 즉시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 아이를 만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말씀 한마디를 하셨습니다. 아니- 어떻게 말씀 한마디를 했는데 그런 기적이 일어납니까?
여러분, 예수님은 온 우주가 당신의 ‘말씀’이라는 네트워크로 얽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고, 그 연결망을 통해 기적을 일으키는 명령어를 즉시 전송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기적들을 최신 과학으로 알아보며,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이러한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믿음과 권세를 회복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나는 여기 캐나다 땅에 있는데, 내가 기도하는 사람은 한국에 있을 수 있고, 혹은 내가 여기서 기도는 하지만, 도저히 그 사람에게 직접 가지 못할 사정과 형편 때문에 그저 멀리서만 기도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과연 내 기도가 이루어질까요? 내 기도가 하나님께 도달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리고, 어떤 조건들이 필요할까요?
제가 청년 시절에 어머님과 같이 삼각산에 있는 한 기도원 집회에 간 적이 있습니다. 집회가 마친 후 저의 어머님이 강사 목사님에게 안수기도를 받으셨습니다. 그때 저의 어머님이 이렇게 기도 부탁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제 남편이 여기 어깨가 매우 아파요. 그러니 제 어깨에다 대신 손을 얹고 안수기도해주세요.”
그리고 저와 어머님이 집에 가서 보니 저의 아버님의 어깨가 깜쪽같이 다 나았습니다.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참으로 신기합니다. 오늘의 본문에도 보면 로마의 백부장이 나옵니다. 자기 하인이 중풍병에 걸려 심히 고생합니다. 예수님이 그 하인을 고쳐주려고 백부장의 집에 가려고 하자 백부장이 이런 고백을 합니다. “주여, 말씀만 하시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나이다.”(마8:8)
예수님은 백부장의 이런 믿음에 대해 심히 놀라시면서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마8:10)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의 고백을 한 백부장에게 예수님이 선포합니다.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예수님은 환자를 보려고 그 장소에 가지도 않으셨습니다. 직접 그 환자를 진찰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저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는 말씀 한마디로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환자를 치료시켰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이런 백부장의 믿음을 가지고 기적을 맛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백부장은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는데 거리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이 사실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기적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일어납니다. 특히 치료의 기적이 멀리 떨어져 있는 여러분의 가족에게도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이런 기적들, 특히 원격 치료와 같은 기적이 일어나는 원리를 과학의 관점에서 설명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성경의 기적이 꾸며낸 이야기나 미신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진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알아보면서 같이 치료의 기적을 맛보고 건강해지시기를 소원합니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은 처음에 우리를 어떻게 설계하셨기에 이런 원격 기적이 가능한 것일까요? 저와 여러분의 믿음의 기도가 어떻게 시공간을 뚫고 타인의 삶을 바꿀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그 비밀을 과학적으로, 특히 양자역학이란 최신 과학으로 파헤쳐 보겠습니다.
1. 태초의 디자인 :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로 얽힌 존재였습니다.
최초에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 단순히 흙으로만 빚은 인형이 아니라, 그 코에 하나님의 ‘생기(영)’를 불어넣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과 영적으로 하나가 되는 완벽한 ‘양자얽힘’ 상태였음을 의미합니다. 즉 최초의 인간인 아담은 하나님과 분리될 수 없는 존재로 설계되어 늘 하나님과 대화하며 교통하는 사이였습니다.
예를 들면 산모와 탯줄로 연결된 아기는 배고프다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엄마의 영양분을 실시간으로 공급받습니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누렸던 상태는 이보다 훨씬 더 완벽한 ‘실시간 동기화’였습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은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실시간으로 공급받는 존재였습니다.
2. 죄의 비극 : 연결을 끊어버린 치명적인 노이즈(Noise)
그런데 마귀가 ‘죄’라는 바이러스를 심어 이 완벽한 얽힘을 깨뜨렸습니다. 과학에서는 이를 ‘결어긋남(Decoherence)’이라고 부릅니다. 아담이 죄를 짓자마자 하나님을 피해 숨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하나님과 주파수가 맞지 않게 되어 더 이상 같은 공간(상태)에 머물 수 없게 된 양자적 분리를 의미합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려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사59:2) 즉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주파수를 교란하여 영적 통신을 단절시켰습니다. 이때부터 인간은 영적인 고립 상태, 즉 와이파이가 끊어진 스마트폰처럼 기능이 마비된 상태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아시지 않습니까? 아무리 좋은 스마트폰이라도 전파 차단 구역에 들어가면 먹통이 되고 맙니다. 즉 죄는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이라는 기지국으로부터 고립시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를 짓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겁니다. 왜냐하면 죄를 지으면 하나님과 대화의 신호가 약해지고 끊어지기 때문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 : 끊어진 채널을 복구하는 유일한 브릿지(Bridge)
우리는 스스로 이 죄의 차단막을 뚫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자 하나님인 예수님이 직접 인간의 몸을 입고 ‘연결 장치’가 되어 내려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인간이신 유일한 ‘커넥터’입니다. 예수님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과 끊어진 두 세계의 전선을 다시 잇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이 직접 말씀합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있던 그 단단했던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완전히 찢어졌습니다. 이 사건은 막혔던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데이터 전송 통로가 다시 뚫렸음을 의미합니다.
고로 이제 우리는 예수님이라는 채널을 통해 다시 하나님과 ‘실시간 얽힘’ 상태로 복구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의 이름으로’라고 선포하는 순간, 흐릿했던 연결이 ‘초고속 데이터 전송 상태’로 바뀝니다. 하나님의 능력(무한 에너지)이 내 삶이라는 단말기로 실시간 다운로드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우리가 영적으로 끊어졌던 것이 예수님으로 다시 연결되어 하나가 되는 것에 대해 성경은 ‘한 영’(고전6:17)’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종교나 철학으로도 이 고유한 주파수를 맞출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 만이 하나님과 인간을 다시 ‘한 영’으로 묶어주는 유일한 ‘인터페이스(interface)’이십니다. 성경도 이에 대해 분명히 말씀합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4:12)
4. 기도와 의심 : 응답의 주파수를 고정하는 ‘관찰자 효과’
그런데 왜 어떤 기도는 응답되고 어떤 기도는 막힐까요? 기도가 데이터 통신이라면, 의심은 ‘노이즈(잡음)’이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기적이 우리에게 일어나기 위해서는 의심의 노이즈를 제거하고 ‘믿음의 주파수’를 계속 유지해야만 합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말씀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히11:1) 즉 믿음의 관찰을 계속 유지할 때 기적은 실상이 됩니다. 현대 과학인 양자역학에서는 관찰자가 보는 대로 입자의 상태가 결정됩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은 ‘응답’이라는 현실을 관찰을 통하여 고정하는 힘입니다.
반면, 의심은 기적의 파동을 흩트리는 잡음입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말씀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약1:6-7) 예를 들어봅시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보고 물 위를 걸을 때는 중력이라는 물리 법칙을 이기는 기적의 파동이 유지되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의 시선이 파도를 관찰하는 순간 그의 데이터 채널에 ‘공포’라는 노이즈가 섞였고, 그 즉시 예수님과의 얽힘이 풀리며, 베드로는 다시 중력의 지배를 받고 물속에 빠졌습니다. 즉 기적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의심이라는 노이즈를 제거하고 ‘믿음의 주파수’를 끝까지 유지하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의심은 기적의 와이파이를 스스로 끄는 행동입니다.
5. 예수의 이름 : 우주적 마스터 키(Master Key)
마지막으로, 우리가 왜 기도 끝에 그분의 이름을 불러야 하는지 그 비밀이 여기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라.”(요14:13-14) 즉 예수님의 이름은 우주의 중앙 서버에 접속하여 현실의 데이터를 수정할 수 있는 ‘관리자 권한(Admin Access)’입니다. 너와 내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서버에 나의 신분을 증명하고 접속하는 행위입니다.
백부장이 예수님에게 “주여, 말씀만 하옵소서. 그리하면 내 종이 낫겠나이다.”라고 했을 때, 그는 예수님 이름이라는 마스터 암호의 위력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그 고백대로 예수님이 “가라. 네 믿은대로 되라.”고 하시자 그의 하인이 즉시 나았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가나에서 “네 아들이 살았다.”라고 코드를 입력(선포)하시는 순간, 30km 떨어진 가버나움의 아들의 몸에서 즉시 병이 사라지고 치료를 받았습니다. 이때 거리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내 힘으로는 바꿀 수 없는 절망적인 확률의 데이터를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으로 ‘강제 업데이트’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들 스마트폰 가지고 있지요?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여러분이 스마트폰에서 메모를 수정하면 집에 있는 데스크톱 컴퓨터에도 메모가 즉시 똑같이 바뀝니다. 그거 누가 가서 고친 게 아닙니다. 스마트폰과 데스크톱이 직접 선으로 연결되어서도 아닙니다. 두 기기가 ‘클라우드’라는 하나의 망에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바로 이겁니다. 데이터가 동기화될 때 우리는 데이터가 공중으로 날아가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거의 ‘동시에’ 양쪽 기기의 화면이 일치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여기서 기도할 때 멀리 떨어진 사람에게 즉시 기적이 일어나는 이유는, 기도자와 대상자가 모두 하나님이라는 ‘우주의 중앙 서버’에 접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고로 내가 여기서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해 로그인하고, 기도로 ‘치유와 회복’이라는 데이터를 입력하면, 하나님이라는 거대한 클라우드 서버를 통해 멀리 떨어진 여러분의 자녀, 부모님, 친구의 삶이라는 화면에 그 결과가 실시간으로 뜨게 되는 겁니다. 즉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데이터의 동기화 현상은 하나님 나라에서 시공간을 초월해 역사하는 기도의 원리와 소름 끼칠 정도로 닮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동기화요, 영적인 양자얽힘의 능력입니다. 즉 기도는 어떠한 첨단기술보다 더 정밀하고 빠릅니다. 그리고 스마트폰의 데이터를 데스크톱에서 보려면 반드시 같은 아이디로 로그인해야 합니다. 아무나 남의 데이터를 볼 수는 없으니까요. 이것을 영적 원리로 적용하면 ‘예수님의 이름’이 바로 그 로그인의 아이디(ID)이자 암호(Password)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라고 선포하는 순간, 불가능의 영역이 가능의 영역으로 바뀌게 됩니다. 닫혀 있던 확률의 문이 다시 열리고, 하나님의 자원이 우리들의 삶으로 실시간 다운로드 되기 시작합니다. 고로 그분의 이름을 외치고 부르십시오. 성경은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10:13)
6. 결론 : 이제 접속하십시오, 그리고 선포하십시오!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원래 하나님의 능력을 그대로 끌어다 쓰던 우주 최강의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마귀라는 해커가 ‘죄’라는 바이러스를 심어서 그 연결을 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인간은 먹통이 되고 말았습니다. 자기를 낳아준 하나님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캄캄한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을 믿는 순간, 내 영혼에 백신이 깔리고 하나님과의 연결이 다시 복구됩니다. 캄캄한 인생이 다시 환한 빛을 받게 됩니다. 고로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딱 하나입니다. 예수님 이름의 마스터 키를 사용해서 기도의 버튼을 누르십시오. 그럼 2,000년 전 예수님이 원격으로 병을 고치셨던 그 권능이, 지금 여러분의 삶 속에, 여러분의 고민 속에,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동시에’ 나타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저와 여러분의 기도는 공 중에 흩어지는 메아리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는 그 순간, 우주의 근본 설계도가 다시 그려지기 시작합니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네트워크가 다시 가동되기 시작합니다. 거리가 멀어서 안 된다고요? 상황이 최악이라 가망이 없다고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시공간을 만드신 분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이라는 채널에 붙어있기만 한다면, 2000년 전 가버나움에서 일어난 그 ‘즉각적인 기적’은 오늘 여러분의 가정에, 여러분의 일터에, 여러분의 아픈 몸 위에 그대로 재현됩니다. 백부장의 하인이 나았던 그 ‘즉각적인 동시성’의 기적은 오늘도 저와 여러분의 삶에도 일어납니다.
고로 오늘 의심의 로그아웃을 멈추고 믿음으로 접속하십시오. 예수님 이름의 마스터 키를 꺼내어 여러분의 절망을 향해 선포하십시오. “나는 하나님과 다시 얽힌 존재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모든 어둠의 노이즈는 물러가고, 하늘의 평강과 치유가 지금 이 시간 내 삶에 실시간으로 나타날지어다. 치료가 일어날지어다.”
이제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온 우주의 주인인 하나님과 다시 얽힌 특별한 존재들, 즉 하나님과 하난가 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겁니다. 아무쪼록 여러분의 기도가 시공간을 뚫고 즉시 하나님의 보좌에 상달 되어, 이 땅의 모든 한계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기적과 치료와 영광을 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 : 하나님, 우리도 치료받아야 합니다. 젊은이도 노인도 치료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부모님과 자녀들도 치료받아야 합니다. 그들도 치료받아야 합니다. 그 옛날 백부장의 치료의 기적이 우리에게도 이루어지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