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육하원칙

날짜: 
2026/04/04
말씀: 
롬8:9-11
말씀구절: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설교: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도 경이로운 사건을 꼽으라면 단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일 것입니다. 기독교는 단순히 좋은 도덕적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실 위에 세워진 생명 그 자체체입니다. 성경은 부활이 단지 주관적인 환상이나 제자들의 간절함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사건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건은 ‘육하원칙’에 따라 기록될 때 비로소 객관적인 사실로 인정받습니다. 부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수많은 증인의 목격 아래 이루어진 ‘실제적 사건’입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며,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의 사슬 아래 신음하는 가련한 존재일 뿐입니다.

오늘 우리는 부활을 육하원칙을 통해 살펴보면서 우리들의 신앙의 뿌리인 부활을 재확인하고, 그 압도적인 부활의 능력이 오늘날 고단한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 시에 일어날 저와 여러분들의 부활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아봄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 누가(Who): 죄의 사슬을 끊고 사망 권세를 이기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죽음이라는 인류 보편의 종착역을 역행하여 다시 사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인류 역사의 성인이라 불리는 석가, 공자, 마호메트의 무덤은 화려하게 보존되어서 그들의 죽음과 업적을 기리지만, 그리스도의 무덤은 역설적으로 ‘비어 있음’으로써 그분의 살아나심을 웅변합니다.

즉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이 단순한 도덕적 스승이나 혁명가가 아니라, 죄가 전혀 없으신 ‘참 하나님’이심을 온 천하에 공포한 신적 선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러나 죄 없으신 주님께는 죽음이 행사할 법적 권한이 없었습니다. 죽음의 입장에서 예수님은 결코 소화할 수 없는 생명이셨기에, 무덤은 그분을 뱉어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가 믿는 그분이 누구인지를 확증하여 주며, 우리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을 얻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음을 보증합니다.

2. 언제(When): 구약의 예언이 정밀하게 성취된 제삼일의 새벽

예수님은 성경에 미리 기록된 대로 장사 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유대인의 시간 계산법과 복음서의 기록을 대조해 보면, 금요일 오후 3시경 운명하신 순간부터 주일 새벽까지 약 36시간에서 39시간이 흐른 시점입니다. 이 시간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구약의 오랜 예언(고전15:4)이 톱니바퀴처럼 정밀하게 맞물려 들어간 순간입니다.

유대 법상 시신이 부패하기 시작하여 완전한 죽음을 확정 짓는 최소한의 시간이 흐른 뒤, 만물이 잠든 가장 깊은 새벽의 어둠 속에서 ‘새로운 창조’의 빛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는 인류의 절망에 종지부를 찍고, 하나님의 희망의 시간이 인간의 절망의 시간 속으로 침투해 들어온 역사적인 분기점입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의 가장 어두운 삶 속에도 주님은 동일하게 부활의 빛으로 찾아오십니다.

3. 어디서(Where): 제국과 죽음의 봉인을 깨뜨린 예루살렘의 빈 무덤

부활의 현장은 로마 권력의 상징인 빌라도의 인봉과 정예병들의 삼엄한 감시가 있었던 예루살렘 외곽의 무덤이었습니다. 인간의 권력과 죽음의 공포로 굳게 닫혔던 돌문은 하나님의 권능 앞에 무력하게 굴러떨어졌습니다. 제자들은 처음에 시신이 도난당했다고 생각했으나, 무덤 안의 풍경은 도둑의 소행이라기엔 너무나 경건했습니다.

몸을 감쌌던 세마포와 머리를 쌌던 수건이 마치 허물을 벗듯 잘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급히 시신을 훔쳐간 흔적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구속을 뚫고 스스로 나오신 승리자의 흔적이었습니다. 빈 무덤은 이제 더 이상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영원을 향해 열린 새로운 관문임을 선포하는 가장 강력한 고고학적 증거가 됩니다.

4. 무엇을(What):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의 영광스러운 실재

예수님은 단순히 이전의 연약한 육체로 회생하신 것이 아닙니다.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면서도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고 손의 못 자국을 만지게 하실 수 있는 ‘신령한 몸(Spiritual Body)’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은 장차 우리 성도들이 입게 될 부활의 ‘첫 열매’입니다.

애벌레가 번데기의 과정을 거쳐 전혀 다른 존재인 나비가 되어 창공을 날아오르듯, 우리의 썩어질 육신도 주님 오실 날에 썩지 아니할 영원한 영광의 몸으로 덧입혀질 것입니다. 이 부활의 실재는 우리에게 질병과 노화, 그리고 육체적 소멸이라는 죽음의 공포를 넘어서는 궁극적인 위로와 소망을 부여합니다.

5. 어떻게(How):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과 성령으로

부활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권능 안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역사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부활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오늘의 본문은 말씀합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8:11)

아담이 창조될 때 하나님이 그 코에 생기 즉 성령의 바람을 불어넣자 비로소 아담이 산 사람이 된 것처럼, 또한 처녀인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한 것도 성령으로 된 것처럼, 성령님은 예수님의 부활을 가능케 했고, 장차 있을 저와 여러분의 부활도 성령님이 가능케 하신다는 겁니다. 고로 예수님은 부활 하신 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으라.“(요20:22)

오늘의 본문에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롬8:9-10)

즉 우리들은 단지 예수님을 믿는 데에 그치지 말고 예수님이 말씀하신바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들도 예수님의 재림 시에 그 성령님의 능력으로 부활의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이미 받으신 분들은 육체의 소욕에 빠져서 성령을 소멸하면 안 됩니다. 항상 기도하며 거룩함을 지키며 성령님과 동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부활의 날에 우리도 부활할 수 있습니다.

6. (Why): 우리의 구원을 완성시키고 희망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 거대한 우주적 기적인 부활을 예수님과 장차 우리들에게 허락하신 이유는 결국 우리들의 구원을 완성시키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의 죗값을 치른 ‘결제’였다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 대속이 완벽하게 성취되었음을 하나님이 온 우주 앞에 승인하신 ‘영수증’입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십자가는 단지 비극적인 사형 집행으로 끝났을 것이고, 저와 여러분의 믿음은 헛된 망상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다시 사심으로 우리는 정죄의 감옥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고로 우리는 죽음과 그 죽음 이후를 두려워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도리어 오늘이라는 고난 속에서도 내일의 영광을 미리 맛보며 사는 희망의 소유자가 되었습니다. 현재의 고난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입니다. 그리고 장차 나타날 그 영광은 부활로 말미암아 현실화되고 완성이 됩니다. 고로 부활은 우리에게 희망 그 자체입니다.

결론입니다. 부활은 과거의 빛바랜 기록으로 박제된 사건이 아닙니다. 부활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들의 삶의 무거운 바윗덩이를 굴려 내는 실제적인 원동력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가장 먼저 슬픔에 잠겨 울고 있던 막달라 마리아를 찾아오셨습니다. 의심에 가득 차 방황하던 도마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실패의 자괴감에 빠져 그물을 던지던 베드로에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이름을 다정히 부르시고, 못 자국 난 손을 보여주시며, 따뜻한 조반을 차려주셨습니다. 그리고 힘을 잃고 처진 그들에게 다시 용기와 사명감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들에게 다시 성령님으로 찾아오셔서 늘 그들과 동행하며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잊지 마십시오. 그 부활의 주님은 2000년이 지난 오늘날 이 외국 땅에서 때로는 낙심하며 어렵게 사는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도 동일하게 찾아오십니다. 고로 이제는 너와 내가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 부활의 능력으로 절망의 늪에서 탈출하여 희망으로 돌아서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각자에게 맡겨주신 그 사명을 끝까지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힘을 내야 합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예수님이 무덤을 박차고 나왔듯이 나도 너도 절망과 낙심의 무덤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주님의 재림 시에 우리들도 주님처럼 부활하여 영원히 주님과 함께 아버지의 영광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주님, 2000년 전 일어난 주님의 부활이 오늘날 우리들의 삶에도 이루어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장차 있을 그 날의 부활을 바라보며 희망에 거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아직도 힘들어하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힘을 주시옵소서. 서로 사랑하게 하시며, 주의 일에 더욱 힘쓰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