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최선이 다가 아니다.

날짜: 
2025/08/09
말씀: 
출22:1
말씀구절: 

1 사람이 소나 양을 도둑질하여 잡거나 팔면 그는 소 한 마리에 소 다섯 마리로 갚고 양 한 마리에 양 네 마리로 갚을지니라

설교: 

“최선을 다했다.”는 말은 참으로 아름답고 진실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특히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쳤을 때, 최선이 ‘면죄부’가 될 수 없습니다. 왜 최선만으로 부족할까요? 오늘은 이에 대해 알아보며 같이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최근 저의 교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지붕 수리업체가 일기예보를 잘못 보고 공사를 하다가, 그만 중간에 비가 왔습니다. 그로 인해 빗물이 성전 안으로 들어와 천장이 다 젖어서 심하게 얼룩이 졌습니다. 의자와 방석들도 물에 잠기고 큰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견적을 내보니 74,000불이 나왔습니다. (우와- 많이 나왔지요?)

그리고 물질적인 피해뿐만 아니라 이를 수습하기 위해 당장 교회 식구들과 비상 복구 작업을 해야 했고, 이로 인한 정신적인 쇼크도 크게 받았습니다. 또한 어렵고 까다로운 보험처리를 법률과 문화가 다른 이곳 외국 땅 캐나다에서 영어로 하느라 몇 개월을 소비했습니다.

그렇지만 지붕 수리 회사는 “저희들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빨리 공사비 잔금을 주십시오.”라고 요구했습니다. 심지어 교회가 불쌍한 일일 노동자들에게 공사비 잔금을 주지 않는다고 주위에 이상한 말이 들려왔습니다. 아- 공사비 잔금은 사고가 나서 보험사 직원과 상의하여 잠시 지불유예 중이었습니다.

어때요? 여러분, 이 사건에 대해 옳고 그름, 즉 선악을 분별해 보십시오. 그들이 최선을 다했다고 하지만 고객은 그로 인해 큰 재산 피해 + 정신적, 시간적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래놓고 최선을 다했다는 말로 책임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이때의 최선은 단지 시작일 뿐입니다.

최선이 책임을 회피하는 방패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때는 먼저 고객에게 자신들의 실수를 깊이 사과하고, 이에 대한 피해를 복구하고 보상하는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에 대한 또 다른 예화입니다. 한 병원의 간호사가 실수로 환자인 아이에게 잘못된 약을 주어서 아이가 거의 죽다가 간신히 살아났습니다.

그러자 아이의 부모가 약을 잘못 준 간호사에게 따졌습니다. “왜 약을 잘못 주어 우리 아이를 이 지경으로 만드느냐? 하마터면 아이가 죽을 뻔하지 않았느냐?” 그러자 그 간호사는 이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와 배상은커녕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 부모는 더 화가 나고 마음이 찢어질듯 아팠습니다.

여러분, 이 예화들을 통해 우리는 이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최선을 다했어도 실수가 났다면, 그 실수로 인해 발생한 피해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성숙한 자세입니다. 예를 들면 의사가 환자에게 최선을 다했지만 오진으로 인해 환자나 환자의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었다면 사과와 보상도 필요합니다.

둘째, “나는 최선을 다했어.”라는 말은 행위자의 자기변호일 수 있지만 피해자의 고통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도리어 “최선을 다했어.”고 말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피해자의 마음을 더 안 좋게 합니다. 셋째, 최선이라는 기준은 주관적입니다. 남이 보기에 부족할 수 있는 ‘나만의 최선’이 책임과 결과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수 없습니다.

이 주제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은 이렇습니다. 오늘의 본문 출애굽기 22:1 말씀입니다. “사람이 소나 양을 도적질하여 잡거나 팔면, 그는 소 하나에 소 다섯으로 갚고, 양 하나에 양 넷으로 갚을지니라.” 즉 잘못이 실수든 고의든 간에 타인에게 손해를 끼쳤으면 배상이 원칙입니다. 이때 “저는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에요.”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라는 말로는 부족합니다.

이때는 최선을 다했는가가 초점이 아니라, 상대방이 피해를 회복했는가가 중요합니다. 성경은 회복과 배상, 그리고 진심어린 회개를 강조합니다. 누가복음 19:8에 세리장이 삭개오의 고백입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배로 갚겠나이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난 후 단순히 “제가 이전에 잘못했어요.” “저는 그때에 최선을 다했어요.”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회복과 배상으로 회개를 표현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22:9)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즉 구원의 확신과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말로만의 회개가 아니라, 최선을 다했다고 외치는 것이 다가 아니라, 나의 잘못된 말과 행동으로 인해 상대방이 마음이 아프고 손해를 입은 것에 같이 마음 아파하고, 그에 따른 배상까지 해주어야 완성이 된다는 겁니다.

또 다른 성경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은 전쟁에서 자신의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말을 합니다. 그는 좋은 짐승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 했고, 실지 하나님을 위하는 의도도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건 너의 생각이고, 나의생각은 아니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삼하15:22)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자기의 최선이 때로는 하나님 보시기에 최악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최선을 다하는 태도는 너무나 좋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불순종하고 자기만의 최선이 때로는 하나님을 더 분노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결국 사울 왕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했지만, 그로 인해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는 계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좀 시각을 바꾸어 여러분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고 싶습니다.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둘 중 한 사람을 골라보십시오. 첫째, 실력이 없는 사원이 최선을 다하여 일하면서 회사에게 50%의 이익을 남겨주었습니다. 둘째, 실력이 매우 뛰어난 사원이 자기의 최선은 다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에게 80%의 더 큰 유익을 남겨주었습니다.

이때 당신이 회사의 주인이라면 솔직히 누구를 택하시겠습니까? 아- 물론 실력도 좋고 최선을 다하면 가장 좋겠지요. 반면 실력도 나쁜데 최선도 다하지 않으면 그건 최악입니다. 이와 비슷한 또 다른 질문을 해볼까요? 둘 중 한 사람을 골라 보십시오. 첫째, 실력이 없는 의사지만 최선을 다하는 의사로서 그의 환자 치료율은 50% 정도 수준입니다.

둘째, 실력이 매우 뛰어난 의사지만 그는 최선을 다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환자 치료율은 80% 이상입니다. 이때 당신이나 당신의 가족이 환자라면 솔직히 어느 의사에게 가고 싶습니까? 이런 비슷한 경우는 현실에서 너무나도 많이 접하게 됩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실력 없는 목수가 최선을 다하여 10시간 작업하는 것보다 실력 있는 목수가 5시간만 작업해도 더 나은 결과를 얻게 되면 당신은 누구를 쓰겠습니까? 당연히 실력 있는 목수를 쓸 것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 아닙니다. 오히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책임 있는 선택입니다.

그러나 실력 있는 사원이나 실력 있는 의사나 실력 있는 목수만을 쓰는 것을 인종차별이라고 말하고, 도리어 실력이 없는 사원, 실력이 없는 의사, 실력이 없는 목수도 공평하게 써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 이런 분들이 말하는 의도가 무슨 뜻인지 대충 짐작이 갑니다.

그러나 이런 분들에게 질문을 해보고 싶습니다. “당신의 아들이 심히 아프다면 실력 없는 의사에게 진료 받고 싶습니까? 실력이 있는 의사에게 진료 받고 싶습니까? 당신이 회사의 주인이라면 실력 없는 사원을 쓰고 싶습니까? 실력 있는 사원을 쓰겠습니까? 당신의 집을 지으려는데 실력 없는 목수를 쓰고 싶습니까? 실력 있는 목수를 쓰고 싶습니까?

이런 경우 최선을 다하는 사람보다 실력 있는 사람을 쓰려는 것은 결코 인종차별도 아니고 잘못된 판단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최선’의 마음은 좋지만, 책임은 ‘결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중요한 다리를 건설하거나 중환자 수술을 하거나 할 때, 자칫 잘못하다간 사람에게 큰 피해를 입히는 경우에는 최선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에 따른 실력이 있어야 진짜 책임지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즉 ‘최선’이라는 진심은 귀하지만, 실력이 따르지 못해 사고가 날 확률이 높고, 손해가 날 확률이 높으면 그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실력 없는 최선은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저희 교회지붕 수리하다가 사고가 난 업체의 사장님과 며칠 전 공사금 잔금을 마저 주면서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대화중에 사장님이 이런 말을 합니다. “솔직히 저희가 기술력이 딸려 이번 사고가 났습니다. 지붕의 경사도가 올라가 보니 생각보다 너무 가팔라서 짧은 시간에 동시에 작업할 것을 하지 못해서 이런 사고가 났습니다. 죄송합니다.” 즉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실력이 부족해서 본의 아니게 피해를 끼치게 되었다는 겁니다.

결론입니다. 최선과 실력은 대립적인 가치가 아니라, 함께 가야할 덕목입니다. 물론 실력 없는 사람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마땅히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최선이 다가 아니라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자신이 최선을 다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에게 피해가 발생하면 이를 미안해하며 적극적으로 보상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은 최선 + 실력이 더해지는 것입니다. 그때는 금상첨화입니다. 누구나 다 이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만의 최선, 인간의 최선이 아닌 하나님의 최선까지 본받아야 하고, 인간의 실력이 아닌 하나님의 실력까지 나에게 입혀져야 합니다. 아무쪼록 저나 여러분이나 최선 + 실력을 갖춘 보다 책임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때로는 그것만으로 부족했다면 이를 수정하고 보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보다 더 올바르고 성숙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