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오늘의 본문 제목을 보면서 혹시 생각나는 노래가 있지는 않습니까? 저와 비슷한 나이 대의 분들로서 70-80년대 팝송을 즐겨 들으신 분들은 이런 팝송이 생각날지 모릅니다. ‘Time in a bottle’(시간을 병에 담을 수 있다면). 이 노래는 당시 빌보드 차트 1위도 했을 정도로 아주 유명한 곡이고, 오늘날도 아름다운 추억의 팝송으로 자주 들려지는 곡입니다. (한번 들어보실래요?)
곡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만약 내가 시간을 병속에 저장할 수 있다면, 그 시간을 당신과 함께 영원히 보내고 싶어요. 그러나 시간이 항상 부족하네. 시간을 병속에 저장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오늘의 본문에도 이와 아주 비슷한 표현이 나옵니다.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 시를 쓴 시기에 다윗은 눈물을 참 많이 흘렸습니다. 인생사는 것이 슬프고 괴롭고 고통스럽습니다. 한때는 골리앗을 물리치므로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고, 군대 장관도 되고, 사울 왕의 사위였지만, 지금은 도리어 사울 왕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아 이리 저리 광야를 방황하며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어느덧 이렇게 유리방황하는 세월이 10년이 되어갑니다. 다윗은 이 10년간의 고통의 긴 세월을 계수해 달라고 하나님께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때 자기가 흘린 눈물을 주님의 병에 담아달라고 합니다. 즉 나의 고통의 눈물, 서러움의 눈물을 주님이 아시고 위로해 달라는 겁니다.
더 나아가 주님의 책에다 자신이 10년 동안 큰 고통을 겪고 많은 눈물을 흘린 것을 기록해 달라고 합니다.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고백이 혹시 여러분의 인생 고백이 되시지는 않습니까? 여러분도 인생을 살면서 슬프고 서럽고 힘들어 많은 눈물을 흘렸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여러분도 다윗처럼 “주여,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주여, 나의 힘들었던 날들을 계수해 주십시오. 주여, 나의 억울하고 비참하고 서러웠던 인생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하고 주님께 호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흘린 눈물을 병에 담으면 어느 정도가 될까요?
제가 알아보니 사람들의 평균 나이를 80세로 할 때 일생동안 30-70리터의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2리터짜리 큰 콜라병으로 계산하면 적게는 15병, 많게는 35병 정도가 됩니다. 그리고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립니다. 이에 대한 의학적인 근거로, 눈물 분비에 관련이 있는 여성 호르몬인 프로락틴(Prolactin) 수치가 여성이 남성보다 높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 연구에 의하면 여성은 평균 한 달에 5회 정도 눈물을 흘리고, 남성은 평균 한 달에 1-2회 정도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눈물의 양도 여성은 한번 울 때에 약 6분 정도 울고, 남성은 평균 2-3분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우울증 환자의 경우는 울음이 아주 많아집니다.
그렇게 우는 모습을 옆에서 보고 듣는 가족들은 “아- 재가 왜 또 우냐?” 하고 기분이 매우 안 좋아집니다. 그러나 그러한 울음은 한편으로 치유적 효과가 있습니다. 의학과 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눈물은 억눌린 감정을 밖으로 내보내는 ‘안전한 배출구’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면 교감 신경의 긴장이 풀리고, 부교감 신경이 활성화 되어 몸이 진정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또한 울 때에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눈물 속에 포함되어 몸 밖으로 배출됩니다. 동시에 ‘옥시토신’과 ‘엔도르핀‘ 같은 진정 호르몬이 분비되어 긴장과 고통이 줄어듭니다.
성경에도 보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때, 하나님이 치료해주시는 장면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었던 유다왕 히스기가 중년에 죽을병이 들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와서 왕에게 말합니다. “이제 당신은 곧 죽을 테니 집안 정리를 하고 죽을 준비를 하십시오.” 이 말을 듣고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통곡하며 눈물을 흘리며 기도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내가 너의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사38:5) 그리고 이어서 그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자녀가 눈물을 흘리며 부모에게 애원할 때, 부모는 자녀의 눈물을 결코 외면하지 못합니다. 고로 여러분이 기도하다가 눈물이 나오면 그건 좋은 징조입니다.
혹시 큰 통곡이 나올 정도로 울면 그건 더 좋은 징조입니다. 그리고 눈물도 나오고 콧물도 나오고, 이로 인해 얼굴의 화장이 다 지워지고, 얼굴이 벌게지고 엉망진창이 되면서 꺼이꺼이- 울면 그건 진짜 진짜 좋은 징조입니다. 하나님이 내 눈물을 보시고 나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응답의 사인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합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요.”(마5:4) 예수님의 제자 중 가룟 유다와 베드로 두 제자를 비교해 보십시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았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기의 죄를 깨닫고 심히 통곡하며 울음을 터트렸습니다.(눅22:61-62)
주님은 베드로의 그 눈물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다시 회복의 기회를 주셨고, 주님의 양떼를 돌보는 귀한 사명도 맡겨주셨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회개의 눈물을 흘리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자기가 잘못한 것을 알았지만,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자살을 택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눈물을 흘려야 할 때 눈물을 흘리는 것이 좋습니다. 눈물은 회복의 징조입니다. 눈물은 가장 정직한 언어입니다. 눈물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고로 다윗은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여호와께서 내 울음소리를 들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시6:6,8-9)
이를 공동번역으로 보면 더욱 리얼한데 한번 들어보십시오. “나는 울다가 지쳤습니다. 밤마다 침상을 눈물로 적시고, 나의 잠자리는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울다 울다 눈이 안 보이고... 내 울부짖는 소리를 야훼께서 들으셨도다. 야훼께서 나의 애원을 들으셨으니 야훼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리라.”(시6:6-8)
여러분, 하나님이 내 울음소리를 들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었다는 뜻이요, 하나님의 구원이 임한다는 징조입니다. 고로 자주 자주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고 우십시오. 하나님은 눈물의 양만큼 은혜로 채우시고, 슬픔의 눈물을 행복의 웃음으로 바꾸어 주시는 분입니다.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 계시록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주시니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21:4) 다시 말해 이 땅에서 인생을 살다보면 너도 나도 눈물을 흘리고 울 수밖에 없습니다.
갓난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울음으로 첫 호흡을 내쉽니다. 이 울음은 죄로 인해 고통과 슬픔 가운데 시작되는 우리들의 인생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고로 모세는 우리들의 인생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10)
심지어 성경에 보면 예수님도 이 땅에 계실 때에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히5:7) 이로 인해 하나님의 들으심을 얻고 응답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모든 사람들은 눈물로 태어나고, 수많은 슬픔과 고통의 눈물을 흘리며 살다가, 죽을 때에도 눈물의 전송을 받으며 인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러나 저 하늘에는 눈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이 땅에 살면서 흘린 그 모든 눈물, every tear, all tears를 닦아 주시고 넉넉히 위로하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은 내가 흘린 한 방울 한 방울의 눈물이 어떤 상황에서, 왜 그런 눈물을 흘렸는지 일일이 다 아시고, 그 눈물을 병에 담아 보관하십니다. (물론 눈물을 병에 담아 보관한다는 것은 시적인 표현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에 다윗의 고백처럼 주님은 내가 왜 그렇게 눈물을 흘리고 울었는지 아시고 있고, 그 일을 천국 문서에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묻고 싶습니다. 이제까지 인생을 살면서 총 몇 번을 우셨고,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셨습니까? 아마 그것을 모두 기억하는 분은 없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이 땅에서 몇 번을 울었고, 왜 울었고, 그때에 흘린 눈물방울이 얼마큼 되는지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나의 고통, 나의 슬픔, 나의 서러움, 나의 원한을 일일이 다 아시고 위로해주신다는 겁니다. 앞서 소개했던 팝송 제목이 ‘Time in a bottle‘(병속의 시간)인데 오늘의 본문은 ’Tears in a bottle‘(병속의 눈물)입니다.
제가 이 제목으로 인공지능에게 이런 요구를 해보았습니다. “인공지능아, 성경에 나오는 ‘Tears in a bottle’이란 제목으로 하나님의 위로에 대해 감동적인 시를 한편 써봐.“ 그러자 인공지능이 곧 바로 이런 시를 써내려갔습니다. 제가 조금 수정하고 덧붙여서 그 시 한편을 소개합니다.
Tears in a bottle(병 속에 담긴 눈물)
내가 흘린 눈물
사람들은 잊어버려도
주님은 하나하나 모아
병 속에 담으셨네.
세상은 위로 대신
비웃음과 침묵을 주었지만
주님은 눈물 속에 숨은
기도의 언어를 들으셨네.
밤마다 눈물로 젖은 베개 위에서
홀로 떨던 내 마음
그 고통의 조각을
주의 책에 기록하셨네.
이제 나는 아네.
눈물은 헛되지 않으며
병 속에 간직된 그 눈물이
언젠가 하늘에서
기쁨의 진주로 변하리라.
주여, 나의 눈물을 닦으시고
상처 난 마음을 싸매소서.
오늘도 나는 울지만,
내 눈물이 주의 손에 있으니
이미 위로를 받았나이다.
어때요? 여러분, 이 시가 위로가 되고 감동이 되지 않습니까? 우리가 외국 땅에서 살다보면 종종 외로움과 고독함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외국 땅에서 제법 오래 살았어도, 여전히 이곳의 분위기가 그리 평안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조그만 문제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 짜증이 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내 자신의 능력의 한계에 부딪혀서 한없이 초라해지고 작아지는 내 모습을 볼 때도 있습니다. 고로 좀 슬퍼지게 됩니다. 때로는 이런저런 일들이 겹쳐서 많이 슬퍼지기도 합니다. 날씨 영향 받으시고, 특히 가을 타시는 분들은 외국 땅에서의 가을이 더 많이 슬퍼질 수 있습니다.이때 다윗처럼 하나님을 향해 눈물을 흘리며 우십시오. 그리고 그 눈물을 주님의 병에 담아달라고 호소하십시오.
주님은 저와 여러분의 흘리는 한 방울 한 방울의 눈물의 의미를 잘 아시고 있고, 넉넉히 위로해 주실 겁니다. 아무쪼록 여러분의 그 모든 눈물을 주님이 일일이 닦아주시고, 더 이상 고통의 눈물이 없는 하늘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행복과 기쁨 속에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아프고 힘들어 우리는 종종 눈물을 흘립니다. 그때마다 저희들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치료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다시 한 번 주님께 쓰임을 받을 수 있도록 힘과 능력을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