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들

날짜: 
2025/07/27
말씀: 
갈6:4
말씀구절: 

4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설교: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알게 모르게 나를 불행하게 하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당신은 어느 때에 큰 불행을 느끼고 있습니까? 오늘은 나를 불행하게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아보므로 기왕 짧은 인생을 사는데 보다 행복하게 살았으면 합니다.

나를 불행하게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찾아본 결과 대체로 이런 것들이 나를 불행하게 하는 것임이 나타났습니다. 일단 뒤에서부터 순서대로 간단히 살펴볼까요.

8위, 감정억압 : 사람은 감정의 동물입니다. 울고 싶을 때 울지 못하고, 기쁠 때에도 기쁨을 표현하지 못하고, 억압을 당하고 살면 감정의 병이 생길 수 있습니다. 감정의 건강은 불행을 이겨내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7위, 고립과 단절 :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합니다. 혼자 있는 것과 고립되는 것은 다릅니다. 사람들과의 연결이 차단되면 정서적 불행이 깊어집니다. 사랑하고 사랑 받을 수 있는 공동체의 부재는 깊은 외로움을 만듭니다.

6위, 의미 없는 삶 : 돈, 명예, 성취는 있을지 몰라도 삶에 목적이 없으면 허무해집니다. 특히 신앙인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부르심(소명)’이 없는 삶은 인생의 방향을 잃게 합니다.

5위, 계속되는 자기비판 : “나는 안 돼“ ”내가 문제야“라는 식의 자기 비하적이고 자기 부정적인 생각은 뿌리 깊은 불행의 씨앗입니다. 실패는 누구나 겪지만, 자신을 비난하는 방식으로 반응할 때 자존감이 무너집니다.

4위,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 과거의 상처나 배신에 묶여 있으면 계속해서 그 감정에 머물게 됩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나만 불행의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내 마음에 아직도 풀리지 않는 상처나 분노는 무엇입니까? 있으면 신속히 용서로 풀어야 합니다.

3위,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는 욕구 : 이 세상에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사람, 상황, 미래 등 여러 가지가 참 많습니다. 그걸 억지로 내 뜻대로 조정하려고 하면 좌절감만 더 커집니다. 그런 것들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2위, 하나님과의 단절 : 신앙인에게 진짜 불행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졌을 때 찾아옵니다. 겉으로는 신앙생활을 해도 마음은 하나님을 멀리하면 공허해집니다. 요즘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떤가요? 한번 스스로 체크해보십시오. 자- 그럼 나를 불행하게 하는 것 1위는 무엇일까요?

1위, 비교하는 마음 : SNS나 주변 사람들과의 비교는 자존감을 갉아 먹습니다. “나는 왜 저 사람처럼 못하지?”라는 생각은 자기 부정으로 이어집니다. 내가 자주 비교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여러분, 오늘은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 중에 단연코 1위를 차지한 ‘비교하는 마음‘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려고 합니다. 어느 날 연필이 자를 보며 불평을 했습니다. “나는 왜 너처럼 똑바르지 못하고 멋지게 생기지 못했지? 나는 너에 비해 너무 짧고, 깎이면 계속 작아지기만 하고...”

그러자 자가 연필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너처럼 생각을 남길 수도 없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도 없어. 나는 그냥 길이를 재는 도구일 뿐이야.” 연필은 그 말을 듣고 깨달았습니다. “나는 자를 기준으로 나를 비교했지만, 사실 나는 글을 쓰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였구나.”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당근과 오이가 서로를 비교하며 말다툼을 했습니다. 당근이 오이에게 말합니다. “야- 오이야, 나는 색도 예쁘고, 비타민 A도 많고, 건강에도 좋다고!” 이 말을 듣고 오이가 당근에게 말합니다. “웃기지 마, 나는 수분도 많고, 다이어트에도 좋고, 피부에도 좋다고!”

서로를 비교하며 싸우던 두 채소는 결국 김밥 재료로 함께 잘려서 한 줄 김밥 안에 들어갔습니다. 그걸 본 김밥 집 아줌마가 말합니다. “애들아, 너희 둘 다 없으면 김밥이 안 돼!” 여러분, 우리는 서로 다른 모양, 다른 색깔, 다른 기능을 가졌지만 하나님 안에서 함께 할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고로 비교는 무의미 합니다.

성경도 남들과 비교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14-18의 내용입니다. “몸은 여러 지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손은 손대로, 발은 발대로, 눈은 눈대로, 귀는 귀대로, 코는 코대로, 입은 입대로 각각 그 쓰임이 다릅니다.“ 여러분, 우리는 서로 비교하는 존재가 아니라, 각자 하나님이 정하신 목적에 따라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비교는 내가 누군지를 잊게 합니다.

마태복음 25:15의 말씀합니다.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이때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이 비교의 함정에 빠졌습니다. “나는 왜 저 사람처럼 많이 받지 못했지? 겨우 한 달란트라니...”

그리고는 그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버렸습니다. 결국 그는 자기의 달란트를 살리지 못했고, 주인에게 꾸중을 받고, 슬피 울고 이를 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비교는 나를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묻어버리게 만듭니다. 오늘의 분문입니다.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만 있고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갈6:4) 이 구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크게 두 가지로 해석합니다. 첫째, 남에게 자기가 한 일을 쓸데없이 자랑하지 말라.“라는 뜻이고, 둘째,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감을 가져라.”라는 뜻입니다.

한 청년이 SNS를 보고 우울해졌습니다. “친구는 유럽 여행 중이고, 누구는 창업에 성공하고, 어떤 친구는 좋은 배우자와 결혼까지 했는데... 나는 왜 이렇게 제자리일까?” 그는 자신이 실패자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그 친구가 직접 만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그 유럽 사진? 그거 다 몇 달 전에 찍은 거야. 실은 그 회사 그만두고, 지금은 실업자야.” 여러분, 우리는 자주 남의 하이라이트 장면과 내 초라한 뒷모습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진실을 보지 못하게 만들고 감사를 잃게 합니다. 비교 때문에 감사하지 못하고, 도리어 우울함에 빠진 경험이 여러분들도 있지 않습니까? 고로 “당신의 쓸쓸한 무대 뒤를 남의 하이라이트와 비교하지 마십시오.“-스티븐 퍼틱 목사.

비교에 대해 이런 명언들이 있습니다. “Comparison is the thief of joy."(비교는 기쁨의 도둑이다.)-루즈벨트. ”꽃은 옆에 있는 꽃과 경쟁하지 않는다. 그냥 피어날 뿐이다.“-젠 신세로. ”우리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이와 비교할 때, 은혜는 사라진다.“-팀 켈러. ”비교는 은혜의 적이다. 비교는 감사의 문을 닫고, 시기의 문을 연다.“-익명. ”비교는 눈을 멀게 하고, 귀를 닫게 하며, 마음을 아프게 한다.“-캘거리 김목사?

그렇습니다. 얼마 전 제가 기분이 매우 안 좋아졌습니다. 그렇게 기분이 안 좋아진 시간이 거의 하루 정도 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저도 비교의 함정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목사님들도 종종 다른 목사님들과 내 자신을 비교할 때가 있습니다. “저 목사님은 저렇게 성도가 많고, 교회가 큰데 왜 나는 이럴까? 하나님, 이제 목회를 그만둬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비교로 말미암아 저의 기분이 하루 종일 나빠지고, 불행을 느끼는 제 모습을 바라보고, 사실 제가 이를 탈피하고자 오늘의 설교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불행의 1순위가 비로 ‘비교하는 마음’에서 온다는 것을 알고, 이에 대해 여러분들과 같이 은혜를 나누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면서 제가 처음 하나님께 주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을 때를 기억해보았습니다. 그러한 부르심을 받고 난 후 저는 이 세상의 그 어떤 목사님도 부러워한 적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순복음의 목사로서 조용기 목사님도 부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귀한 약속과 소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도 저는 이 세상의 그 어떤 목사님도 부러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분들이 위대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저는 저이고, 그 분들은 그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분들과 저의 사명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합니다. 그런 비교는 도리어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소명과 은혜를 천하게 만들고, 기쁨과 행복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성경에 보면 그렇게 비교의 함정에 빠져서 기분이 안 좋아진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구약에 보면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이 나옵니다. 그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자 이스라엘 여인들이 이렇게 노래합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삼상18:7)

이 노래를 듣고 사울왕은 기분이 몹시 불쾌하고 심히 화가 났습니다. “아니- 나에게는 천천의 공을 돌리고, 다윗에게는 만만의 공을 돌리다니!” 그는 자신과 다윗을 비교하는 그 노래를 듣고 열등감에 빠졌습니다. 시기와 질투가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큰 불안에 빠져 결국 다윗을 죽이려는 집착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는 귀신에 사로잡히게 되고, 결국 하나님의 신은 떠나고 몰락의 길을 걷게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비교는 자칫 마음의 질투를 불러오고, 영혼을 병들게 합니다. 고로 내가 남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비교의식을 버리시고, 하나님 앞에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구약에 보면 요셉과 그의 형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특별히 사랑하자 그의 형들이 이를 못 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런 비교의식은 그들에게 요셉을 질투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심어주었고, 결국 그들은 요셉을 구덩이에 던지고, 요셉을 노예로 팔아넘기는 큰 범죄로 이어졌습니다.

여러분, 비교의 대상에 있어서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나보다 잘난 사람과의 비교입니다. “왜 나는 저 사람처럼 못하지?” ”나는 아무 것도 아니야...“ 이런 비교의 부작용은 열등감, 좌절감, 자존감 저하, 패배주의, 감사하지 못함, 질투하는 마음입니다. 기분이 나빠지는 주된 원인입니다.

여러분, 혹시 지금 기분이 나쁜 사람이 있습니까? 갑자기 배탈이 난 사람이 있습니까? 왜 그러지요? 혹시 사촌이 땅을 사서 그렇지 않습니까? 아니면 옆에 있는 여자 친구가 성형 수술이 잘되어 나보다 더 예뻐져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습니까? 하여간 한국 사람들의 비교의식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남이 잘되거나 친한 친구가 잘되면 갑자기 안색이 변하고 기분이 나빠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인해 여기 캐나다로 이민 오는 한국 분들도 제법 있습니다. 캐나다는 한국처럼 그렇게 서로를 심하게 비교하지 않습니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 개성 있게 삽니다.

그리고 둘째, 나보다 못난 사람과의 비교입니다. 이에 대한 부작용은 교만, 우월감, 자아도취, 성장 멈춤, 사람 무시, 은근한 비판입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이 그랬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세리와 비교하며 말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눅18:11-14)

바리새인은 자기보다 못하다고 여긴 사람을 비교하여 자기의 의로움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기분이 더럽게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바리새인을 싫어했습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낮춘 겸손한 세리가 의롭다고 하셨고,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여러분, 교만은 자칫 비교에서 오기 쉽습니다. 그리고 교만에 대한 성경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

이렇게 나보다 잘난 사람과 비교하고 혹은 나보다 못난 사람과 비교하는 것은 서로 반대처럼 보이지만, 사실 둘 다 나를 불행하게 만들 수 있는 함정입니다. 비교는 나를 둘로 찢습니다. 나보다 높은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고, 나보다 낮은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커지려 합니다. 그 결과 기분이 좋았다 나빴다 감정이 요동치고 결국 스스로 불행이 함정에 빠지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누구나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괜히 비교할 필요 없습니다.

셋째, 동료 간, 비슷한 사람들 간의 비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후 베드로는 예수님으로부터 자신의 사명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베드로는 장차 십자가에서 거꾸로 매달려 순교를 당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베드로가 좀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래서 자기 옆에 있는 요한을 가리켜 물었습니다.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에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그가 어떻게 되든지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요21:21-22) 즉 옆에 사람, 남의 인생과 비교하지 말고, 자기의 사명에 집중하라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남과 비교를 하면 자신의 사명에 대한 초점이 흐려집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길과 다른 역할, 다른 사명을 주셨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알아볼 것은 비교가 모두 다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즉 어떤 태도로, 어떤 기준으로, 누구와 비교하느냐에 따라 선하거나 좋은 점도 있습니다. 일명 지혜로운 비교, 건강한 비교, 성찰의 비교입니다. 고린도전서 11:1의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바울은 예수님을 기준으로 자신을 점검하고, 예수님의 삶을 본받으라고 우리들에게 권면합니다. 또한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선진들을 소개합니다. 아벨, 에녹, 아브라함, 사라, 모세 등을 언급하며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고 합니다. 이것은 나쁜 비교가 아닌 모범의 제시입니다.

결론입니다. 우리들의 비교의 기준은 하나님, 예수님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비교를 통하여 자신을 성찰하고, 비교를 통하여 자신의 성장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아무쪼록 나를 불행케 하는 나쁜 비교는 하지 마시고, 하나님 안에서 각각에게 주신 사명과 함께 계속 행복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쓸데없이 남과 비교를 해서 기분이 나빠지고, 교만해지며 불행의 늪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도 괜히 비교하며 기분이 나빠진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건져주시고, 다시 자신만의 사명을 찾고, 기쁨과 행복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