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은혜인가 저주인가?

날짜: 
2025/09/21
말씀: 
롬8:28
말씀구절: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설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늘 지금, 현재, 오늘이라는 순간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지금, 현재, 오늘의 내 삶을 바라보면 모든 게 내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고, 모든 게 선하게 돌아가는 것 같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계획은 종종 어그러지고, 관계는 틀어지고, 몸은 아프고, 세상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가?” “혹시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이 아닐까?” 그런데 성경은 우리들의 이런 생각과 정반대로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의 본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든 것’입니다. 이 말은 지금 당장 나에게 좋은 것만이 선을 이룬다는 뜻이 아닙니다. 도리어 나쁜 일, 실패, 억울함, 심지어 저주처럼 느껴지는 일까지도 포함합니다. 우리는 지금 단편만 보고 있으니 이해가 잘 안 되지만, 하나님은 전체를 보시고 있습니다.

마치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한 부분만 떼어보면 엉망처럼 보이지만, 전체 작품이 완성되면 그 색조와 선들이 꼭 필요한 부분이었음을 알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지금도 작품처럼 엮어가고 계십니다. 오늘은 우리가 깨닫기 어려운 이 진리, “지금은 이해할 수 없지만, 결국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헬렌 켈러라는 여성분이 있습니다. 미국의 작가이며, 교육자이며, 인권운동가이며, 정치인입니다. 이 분은 두 살 때에 갑자기 찾아온 열병으로 인해 청각과 시각을 모두 잃은 복합 장애인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부모조차 절망했고, 주변 사람들은 “이 아이는 평생 아무 것도 못할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이 아이에게 찾아온 그 병은 분명 저주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만남 속에, 한 교사 설리번 선생이 들어 왔고, 헬렌은 손바닥에 글자를 새기며 세상과 소통하는 길을 열었습니다. 나중에 헬렌은 이렇게 유명한 말을 합니다. “내 삶 속에서 가장 큰 불행이, 나의 가장 큰 축복이 되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다가온 그 저주 같은 현실이 나중에 도리어 큰 은혜로 바뀌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성경에는 이런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먼저 성경의 순서대로 요셉을 살펴봅시다. 그는 배다른 형들에게 시기와 질투와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아버지의 심부름을 갔다가 형들에 의해 구덩이에 빠지고, 애급의 노예로 팔리는 인신매매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곳 애급에서도 억울한 강간범의 누명을 뒤집어쓰고 3년간 감옥살이도 했습니다.

그는 계속되는 그 고난 속에서 수없이 질문을 했을 겁니다. “왜 이런 고난이 나에게 다가오지? 내가 뭘 그리 크게 잘못했다고? 그래도 나는 바르게 살려고 노력했고, 나름대로 하나님도 열심히 믿었는데...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난 거야? 하나님, 입이 있으면 말씀 좀 해보세요.”

이런 일을 겪으면서 당시에 요셉은 자기의 인생이 자기가 마음먹은 대로가 아닌 아주 이상하게 흘러간다고 느꼈습니다. 마치 악몽을 꾸는 것 같았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요셉에게 장차 자기가 아주 높은 사람이 된다는 꿈도 주었는데, 어라- 그 꿈과 전혀 반대방향으로 가는 겁니다.

이제는 도저히 하나님이 주신 꿈이 이루어질 것 같지 않습니다. 이제는 그리운 고향에 가보지도 못하고, 아버지 얼굴도 못보고, 이곳 외국 땅에서 비참하게 이대로 인생을 마칠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다가옵니다. 그런데, 어라- 갑자기 일이 또 요상하게 흘러갑니다. 꿈 이야기가 나오고, 애급 왕 바로의 꿈을 해석해주므로 순식간에 요셉은 애급의 국무총리가 됩니다.

이로 인해 요셉은 가족과 민족을 큰 기근에서 구할 수 있었고, 그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까지 연결되는 계보를 이어주게 되므로, 결국 저와 여러분들까지도 구원을 받게 됩니다. 즉 우리가 볼 때 불행과 저주처럼 보이는 일이 나중에 여러 사람들을 살리는 계기가 된다는 겁니다.

요셉은 이에 대해 이런 간증의 말을 형들에게 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이다.”(창50:20)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해 시편에도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시105:17) 즉 요셉에게 일어난 그 저주 같았던 인신매매의 사건이 사실 만민을 구원하려고 하신 하나님의 세밀한 계획이었다는 겁니다.

성경의 ‘룻기‘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베들레헴에서 살던 나오미란 여자가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 모압 땅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곳에서 보다 나은 삶, 보다 행복한 삶을 바라보고 외국 땅까지 간 것입니다. 그런데 어라- 인생이 이상하게 흘러갑니다.

남편이 병이 들어 죽더니, 급기야 결혼한 두 아들마저 자손을 남기지 않고 병이 들어 죽었습니다. 이로 인해 한 가정에 갑자기 시어머니 과부 1명, 며느리 과부 2명, 합하여 3명의 과부촌이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나오미는 스스로 한탄합니다. “나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구나.” 그렇게 나오미는 슬픈 마음으로 쓸쓸히 고향 베들레헴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녀에게는 모든 희망이 사라졌습니다. 단지 먹고 살기 위해 죽기까지 바동거리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어라- 사건이 또 이상하게 흘러갑니다.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에 온 며느리 룻이 나오미의 친족인 보아스와 재혼을 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나오미는 잃었던 남편의 재산도 회복하게 되고, 자손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이 자손의 이름이 ‘오벳’인데, 그는 다윗의 할아버지로서, 이 사람의 족보를 통해 결국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게 되고, 이로 인해 저와 여러분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은 상실과 슬픔 속에서도 새로운 생명과 축복과 행복과 구원과 소망을 준비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번엔 다윗왕의 말년의 인생 스토리를 살펴봅시다.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그는 맨발로 허겁지겁 백발을 휘날리며 울면서 피난길에 오릅니다. 노년에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이때 사울 왕 집안의 시므이란 사람이 따라오며 흙과 먼지를 날리며, 돌을 던지며 다윗을 저주합니다.

이때 옆에 있던 다윗의 부하인 아비새가 다윗에게 말합니다. “왕이여, 저 죽은 개새끼 같은 놈이 왕을 저주하니 당장 저 놈을 죽이겠습니다.” 그러자 다윗이 말합니다. “나둬라.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주시리라.”(삼하16:11-12)

다윗은 사람의 욕과 저주를 단순히 ‘인간의 말’로 보지 않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사건으로 겸손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시므이를 즉각 보복하지 않고 참고 넘어갑니다. 다윗은 자기가 당하는 이 억울한 저주를 하나님이 보시고 오히려 은혜를 주실지도 모른다고 믿었습니다.

즉 그 사람의 말로 인해 당장은 큰 상처와 고통이 다가와도, 하나님의 손에 맡기면 도리어 화가 복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결국 다윗은 다시 왕위에 복귀했고, 자기를 저주한 시므이는 나중에 다윗 앞에 나와 두려워하며 용서를 구하게 됩니다. 즉 다윗이 자기 손으로 원수를 갚지 않고 하나님께 맡겼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원수를 대신 갚아주셨고, 그의 실추된 명예와 권위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여러분, 때로는 사람이 내 인생에 들어와 나에게 던지는 험한 말과 욕설은 저주처럼 들리지만, 하나님이 붙드시고 바꾸시면 결국 은혜가 됩니다. 고로 내가 싸워야 할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나의 마음을 굳건히 지키는 겁니다. 그리하여 더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과 통하면 하나님은 낮은 곳에 있는 나를 위해 일을 해주시는 분이십니다.

가정에서도 때로는 남편이 아내로부터,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저주 같은 말을 듣게 될 때가 있습니다. “당신은 왜 이렇게 못해?” “내가 그때 눈깔이 삐었지. 당신 같은 사람하고 괜히 결혼했어.” 이런 말을 들으면 칼로 마음을 찔린 것 같이 아픕니다. 그 말 때문에 큰 상처가 되고, 낙심이 되고, 때로는 같이 욕과 저주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되갚으려고 하지 말고 잠시 침묵하며 뒤돌아보십시오. 다윗처럼 그 거친 저주의 말까지도 “혹시 하나님이 나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는 건 아닐까?” 하고 겸손히 받아들이면 오히려 그 말이 가정을 돌아보고 깨닫고 변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 그때 내가 아내를 좀 더 배려를 했어야 했는데.” “내가 남편을 더 인정해 줬어야지.”

즉 그 저주 같은 말로 인해 처음엔 서로 간에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 말을 하나님의 은혜로 받으면 도리어 더 좋은 아내, 더 좋은 남편이 되는 계기가 될 수 있고, 부부가 더 성숙하며 가까워지는 은혜의 계단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부부싸움은 저주가 아니라 가정을 보다 행복하게 만드는 은혜로 바뀌게 됩니다.

오늘의 주제를 각자 개인의 삶에 적용해봅시다. 혹 살면서 암 진단이나 큰 사고 같은 일이 생기면 처음엔 그게 저주 같지만, 그것을 계기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 인생의 우선순위가 바로서는 경우가 됩니다. 혹은 직장을 잃거나 실패했을 때는 당장 고통스럽지만, 그 과정을 통해 더 좋은 길을 열어주시는 경우도 됩니다.

십자가를 보십시오. 십자가는 로마 시대 가장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운 형벌입니다. 성경도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것이라고 했습니다.(신21:23) 그런데 스승인 예수님이 죽어도 하필 십자가에 매달려 죽고 말았습니다. 그로 인해 제자들은 큰 혼란이 왔고 깊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보니 십자가는 인류 구원의 길이 되었고,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이 나타나는 사건이 되었고, 구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즉 치욕과 저주의 십자가가 도리어 명예와 축복의 통로가 된 것입니다. 고로 우리 크리스천들은 이제 더 이상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도리어 자랑하고 다닙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합니다. 그런데 본문 앞에 이런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 즉 그냥 아무에게나 자동적으로 모든 게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붙드는 사람에게 결국 합력하여 선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고,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에게는 그 일, 그 사건이 합력하여 선이 이루어지지 않고, 도리어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고로 끝까지 하나님을 떠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향해 결코 불평과 원망을 하지 마십시오. 지금은 당장 그 저주 같은 일이 이해가 안 되어도 계속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내해 보십시오.

결국 모든 것이 아름답게 선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당신의 입에서 “아하- 그때 그 고통스러운 일, 수치스러운 일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설 수 있었구나. 그 때의 그 일로 말미암아 나에게 이런 유익과 행복이 주어졌구나.” 하는 고백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혹시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이런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일이 당신의 시대에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십시오.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로 당신의 후대나 그 후대에 반드시 합력하여 선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하늘나라에서 그 상황을 지켜보고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때로는 나에게 닥친 그 일이 지금 당장은 저주처럼 느껴져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내하며 나아가는 것을 결코 중단하지 마십시오. 결국은 그것이 은혜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순간만 바라보지만 하나님은 전체와 끝을 보시며 선하게 이끌어 가십니다. 고로 평안을 찾으십시오. 계속 기뻐하며 행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겉으로 나타나는 그 저주스런 일로 인해 감사와 기쁨을 잃어버리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결국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귀한 진리를 굳건히 붙들게 하시옵소서. 하나님 사랑하기를 계속하며 이 말씀이 나에게 완벽히 이루어지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