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32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34 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디모데후서 3장에 보면 말세는 고통의 때가 온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 말세의 고통이 어디서 올까요? 바로 순서의 어그러짐 때문에 옵니다. 하나님 사랑을 1등의 자리에 두어야 하는데 ‘자기 사랑, 돈사랑, 쾌락 사랑’을 1등에다 올려두고 산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고통과 불행의 출발은 순서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어그러진 순서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뒤틀려버린 삶의 순서를 바로잡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1등의 자리에 올려놓기를 원합니다. 사실 이 순서가 바로 잡히지 않으면, 예배도, 봉사도, 가정도 전부 가짜요, 무너질 모래성에 불과합니다.
오늘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이 순서를 말씀하시기 바로 직전, 29절에 뭐라고 하십니까?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고 선포합니다. 보통 순서에서 1등이 있다는 것은 2등, 3등과 경쟁해서 이겼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1등은 그런 상대적인 1등이 아닙니다.
세상 그 어떤 존재와도 비교할 수 없고, 견줄 수조차 없는 ‘절대적인 첫 번째’ 즉 ‘홀로 하나이신 첫 번째’입니다. 2등과의 격차가 무한대인 압도적인 첫 번째입니다.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 어떤 다른 것들과 비교할 수 없는 오직 ‘유일무이한 첫 번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처구니없게도 그 위대하신 하나님을 내 인생의 저울 위에 올려놓고 끊임없이 저울질해댑니다. 때로는 돈하고 저울질을 하고, 자식하고 저울질하고, 자기의 출세와 스케줄과도 저울질하고, 자기의 취미나 쾌락하고도 저울질하는 신성모독을 저지릅니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신앙은 껍데기만 남고, 예언한 대로 말세의 고통에 빠지고 맙니다.
여러분, 어디 감히 그 무엇을, 그 누구를 하나님과 비교합니까?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인생의 ‘여러 우선순위 중의 1번’이 아니라, 아예 그 무엇과도 비교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오직 유일한 창조주요, 주권자요, 유일무이한 1등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없어져도, 마지막까지 홀로 영광 받으실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가끔 보면 이렇게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내 가족을 건드는 놈은 절대 가만 안 둔다.” 언뜻 들으면 이 말을 하는 사람은 자기 가족을 굉장히 아끼고 사랑하는 아주 멋진 부모, 멋진 남편, 멋진 아내 같습니다. 그러나 정신 차리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 내 패밀리 영역에는 절대 선 넘지 마십시오. 만약 내 자식, 내 서방, 내 마누라 눈에 눈물 나게 하면 난 언제든 하나님도 버릴 겁니다.”라고 하나님을 협박하는 무서운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종종 그런 잘못된 신앙을 뜯어고치기 위해 큰 시험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은 자신의 목숨보다 귀한 존재였습니다. 예- 그거 좋습니다. 부모로서 자녀 사랑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어느덧 아브라함의 마음속에서 이삭이 하나님보다 앞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요구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22:2) 이때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지시한 모리아 산으로 가서 그 자녀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 칼을 들었을 때, 하나님은 그 순서를 확인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축복하셨습니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 보십시오. 하나님은 이삭을 빼앗으려 하신 게 아니라, 아브라함의 순서가 하나님보다 아들 이삭이 앞서자, 그 순서를 제자리로 돌려놓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서가 바로 서자, 하나님은 이삭도 돌려주시고, ‘여호와 이레’의 예비하시는 축복도 더하셨습니다.
동방의 의인 욥에게도 이런 순서의 테스트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욥을 칭찬하자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욥을 참소합니다. “에이, 욥이 그렇게 하나님을 잘 믿는 이유는 하나님이 주신 복(자녀, 건강, 재물) 때문입니다.” 즉, 욥의 1순위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조건들이라고 참소한 겁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사탄에게도 욥의 순수한 신앙을 증거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 그러면 너가 욥을 시험해보아라. 그러나 그의 생명은 건드리지 말아라.” 그렇게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사탄은 욥을 시험했습니다. 그 많던 재산을 오랑캐가 쳐들어와 모두 약탈해갔습니다. 또한 욥의 사랑하는 열 자녀를 집이 무너져 모두 잃었습니다.
그렇게 하루아침에 열 자녀를 잃고, 모든 재산이 날아갔을 때, 욥의 입에서 나온 고백은 이렇습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1) 보십시오. 욥에게는 자녀도, 재산도 중요했지만, 하나님이 절대적인 1순위였습니다. 즉 조건이 사라져도 1순위가 흔들리지 않았기에, 욥은 사탄의 시험을 완벽하게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 하시고, 욥의 삶을 뒤흔드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순서가 뒤바뀐 인생은 우상 숭배로 향하게 되고, 결국 그 우상 때문에 스스로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그 무엇(이삭)이 있다면 그것을 흔드십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삶의 순서를 바로잡아서 우리를 살리고 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고로 지금 여러분이 하나님보다 더 끔찍이 사랑하고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반드시 하나님 뒤로 옮겨 놓으십시오. 때로는 우상처럼 받들어 모시는 그 가족, 그 자녀도 하나님 뒤로 그 순서를 옮겨 놓으십시오. 그래야 당신도 살고, 가족도 살고, 하나님이 주신 그 축복도 보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순서가 어긋나 하나님보다 돈과 세상 쾌락을 더 사랑하거나, 내 스케줄을 우선으로 두던지, 가족을 하나님보다 더 우선으로 두면, 결국은 그 잘못된 순서가 당신을 망치고, 당신의 영혼을 지옥으로 끌고 들어가는 가장 무서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사실 신앙의 본질은 순서를 바로잡는 겁니다. 순서가 바르게 된 크리스천은 좋은 신앙인이고, 반면 아무리 오래 믿었어도 여전히 순서를 거꾸로 하며 믿는 분들은 신앙의 초보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절대적 첫 번째’로 모셔야 하는 이유는, 애초에 하나님이 없으면 나라는 존재도, 내 귀중한 가족도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이 내 생명의 호흡을 끊으시면 우리는 당장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존재입니다.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빠진 인생은 그 자체가 이미 생지옥이고, 마귀가 제 안방처럼 드나들며 유린하는 놀이터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있어 나를 지켜주기에 사탄이 나를 손대지 못합니다. 사탄은 내가 무서워서 손을 못 대는 것이 아니라, 내 뒤에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이 무서워서 손을 못 대는 겁니다.
즉 가장 강하신 하나님이 1등에서 밀려나는 순간, 사탄·마귀를 막아줄 자가 사라집니다. 말세에 악한 귀신들이 당신의 가정과 자녀에게 떼거리로 몰려와 유린하고 짓밟을 때, 도대체 누가 그것을 막아주겠습니까? 당신의 두둑한 통장 잔고입니까? 아니면 당신의 그 고상한 인격입니까?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사탄 마귀의 머리를 박살 내고, 그 무서운 지옥의 권세로부터 나와 내 가족을 유일하게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실 분은 오직 홀로 하나이신 절대적 첫 번째,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아멘이지요? 같이 한번 따라 해봅시다. “내 인생의 영원한 1순위는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내 자식의 성공 뒤로 밀어내고, 돈 버는 일 뒤로 밀어내며, 내 마음대로 순서를 어긋나게 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내 자식을 지키겠다고, 이 외국 땅에서 내 가정을 지키겠다고 하나님을 2등으로 삼은 것이, 오히려 사탄 마귀에게 내 가정의 안방을 내어주는 가장 미련한 짓이었음을 왜 모를까요?
그리고 이어서 본문에 예수님은 묻지도 않은 두 번째 계명을 덧붙여 말씀합니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31절) 여러분, 이웃 사랑은 하나님 사랑이라는 뿌리에서 흘러나오는 열매입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 사랑을 건너뛰고 곧바로 이웃 사랑(착한 일, 구제, 봉사)으로 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뿌리 없는 나무가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하나님 사랑 없는 이웃 사랑은 금세 밑천이 드러나고, 상처와 자기의 의만 남게 됩니다. 즉 이웃 사랑도 좋지만, 가장 먼저 하나님 사랑이 우선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사랑이 먼저 공급되지 않으면, 이웃 사랑은 의무가 되고, 힘든 노동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다가 왜 실망하고 낙심합니까? 다름 아닌 인간의 사랑은 유한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만큼 베풀었으면 상대방도 알아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내 열정과 내 노력으로 이웃을 사랑하려다 보면 금세 내 내면의 에너지가 바닥납니다. 나를 알아주지 않거나 나를 무시하는 사람에게는 서운함이 생깁니다.
그런 서운함을 이기고 원수도 사랑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 인간에게는 그 아가페 사랑이 없으니 결국 이웃 사랑도, 성도 간에 사랑도 시들해지고 맙니다. 고로 이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아신 예수님이 이렇게 하나님 사랑이라는 절대적인 첫 번째 순서를 정해놓으신 이유는 우리를 제한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도리어 우리를 보호하고 이웃까지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 에너지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즉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내 마음에 가득 채워야, 그 사랑이 넘쳐흘러서 이웃에게 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가장 안전하고 완벽한 사랑의 순서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이제 우리 솔직해집시다. 우리의 입술로는 하나님이 1등이라고 찬양하면서, 정작 돈이나, 취미나, 자식이나, 가정 앞에서는 하나님을 사정없이 2등, 3등으로 혹은 꼴찌로 처박아두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을 뒤로 두고 내 힘과 내 노력으로 내 가정 지키겠다고 했던 그 자리가 어땠습니까? 도리어 사탄이 춤을 추고, 원망과 불평이 가득한 생지옥 아니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내 손에 쥐고 있던 가짜 1등인 그 우상들을 다 내려놓고 주님 앞에 손들고 나아갑시다. 주님이 외면하시면 우리는 갈 곳이 없는 영적 고아들입니다. 사탄·마귀에게 짓밟힐 수밖에 없는 비참한 죄인들입니다. 우리 다 함께 가슴을 치며 이 찬송으로 신앙을 고백합시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