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혹시 지금 인생의 골짜기를 걸어가는 분이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인생에는 빛나고 화려한 산꼭대기 정상의 순간도 있지만, 어둡고 쓸쓸한 골짜기를 나 홀로 지나야만 하는 고독한 순간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는 나름대로 웃고 있지만,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는 홀로 눈물을 흘리며 통곡해 본 적이 다들 있으실 것입니다.
갑작스러운 질병과 통증 앞에 몸도 마음도 무너져 내리는 질병의 골짜기가 있을 수 있고요, 가장 믿었던 이에게 거절당하고, 평생을 약속했던 울타리가 깨어져 이혼과 별거, 배신의 아픈 골짜기도 있고요, 통장 잔고가 바닥나서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음식 하나 사주지 못해 피눈물을 흘리는 가난의 골짜기도 있습니다.
그리고 고국을 떠나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낯선 이국땅에서 서러운 일을 당하고도 하소연할 곳 하나 없어 하늘만 바라보며 눈물짓는 타향살이의 외로운 골짜기까지… 모양과 깊이는 달라도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깊고 어두운 골짜기에서 눈물을 흘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때로는 내 허물과 죄로 인해 자초한 자책감과 수치심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골짜기를 통과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저와 여러분이 걸어가고 있는 그 인생의 골짜기는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자리가 결코 아닙니다. 나를 매장하기 위한 무덤도 아닙니다. 그곳은 주님이 나를 찾아오셔서 내 흘린 눈물을 닦아주시는 위로의 현장이요, 역전을 경험하는 자리입니다.
시편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 그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주나이다.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다.“(시84:6-7) 당시의 순례자들은 하나님이 계신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갈 때 메마르고 사막 같은 ‘바카(눈물) 골짜기’를 지나야만 했습니다.
왜 그곳을 ‘눈물 골짜기’라고 했냐면 그곳에는 ‘바카(눈물)’라는 발삼나무가 자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 나무를 ‘우는 나무’라고 불렀습니다. 이 나무는 상처가 생기면 마치 사람이 눈물을 흘리듯 흰 진액을 흘립니다. 그러나 이 눈물의 바카 골짜기에서 자라는 발삼나무 상처의 진액은 시간이 지나면 향기로운 향유가 되고, 다른 상처를 치유하는 약재로 쓰입니다.
즉 하나님께 나아가는 순례자는 누구나 이 눈물 골짜기를 통과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눈물 골짜기에서 상처의 아픈 눈물을 흘리는 바카 나무처럼 인생의 상처로 인해 흘리는 성도의 눈물은 결코 허무하게 사라지지 않으며, 하나님 안에서 타인을 치유하는 거룩한 향유가 된다는 겁니다.
당시 순례자가 통행하는 바카 골짜기 지역은 자력으로 생수를 얻을 수 없는 메마른 사막입니다. 그러나 순례자가 눈물로 그 골짜기를 지나갈 때, 하나님께서는 그 눈물의 골짜기에 하늘의 단비를 내리시고, 땅에서는 샘물이 터져 나오게 하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즉 눈물 골짜기는 성도를 쓰러뜨리는 곳이 아닙니다. 도리어 신앙의 근육을 강화하고 우리를 더욱 순수하게 만드는 훈련장입니다. 이 인생의 눈물 골짜기를 통과한 성도는 지쳐서 수척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힘을 얻고 더 얻어' 마침내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설 수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지금 눈물 골짜기를 지나고 계시는 분이 있습니까? 그 눈물 골짜기는 당신의 정착지가 아니라 지나쳐 가는 통로일 뿐입니다. 그 눈물 속에서 믿음의 발걸음을 계속 옮길 때, 그 눈물의 골짜기는 머지않아 하나님의 기적 같은 샘물과 복된 단비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었던 수많은 인물을 보십시오. 그들은 모두 이 눈물 골짜기를 지났습니다. 한나는 자식이 없어서 격동당할 때 통곡의 눈물을 기도로 바꾸어 사무엘 아들을 얻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죽음의 병상에서 벽을 향해 심히 통곡함으로 15년의 생명을 연장받았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한 후 밖으로 나가 가슴을 찢는 통곡과 회개함으로 초대교회의 기둥으로 거듭났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배신으로 웅덩이에 던져지고, 감옥에 갇히는 억울함의 눈물 골짜기를 지났으나, 훗날 시대를 구원할 리더로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주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 예루살렘 성전의 핏물이 흘러내리던 어둡고 깊은 ‘기드론 골짜기’를 건너 겟세마네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기름을 짜내는 틀’이라는 뜻의 겟세마네에서 주님은 온몸의 진액을 짜내며 ‘심한 통곡과 눈물로’로 기도하셨습니다.(히5:7) 예수님이 먼저 그 눈물 골짜기를 건너셨기에, 오늘 우리가 흘리는 이국땅의 서러움, 인생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흘리는 그 눈물을 완벽히 이해하시고 닦아주실 수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봅시다. 시편 23편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라고 합니다. 이 시에서 다윗은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위안하시나이다.”(시23:4)
이 시에서 목자인 다윗은 하나님을 자신의 목자라고 불렀습니다. 즉 목자인 자신이 목숨 걸고 양을 돌보듯이 목자인 하나님이 다윗을 지켜주신다는 겁니다. 특히 위험한 유대 광야의 골짜기를 지날 때, 맹수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는 목자는 양의 바로 옆에 몸을 바짝 붙여 지팡이와 막대기로 호위합니다.
우리는 인생의 어둠의 골짜기에 처할 때, 종종 이렇게 묻곤 합니다. “하나님, 왜 나를 홀로 골짜기에 내버려 두셨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통곡할 때, 사실 주님은 한순간도 나를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나의 가장 가까운 곁에서 나를 감싸 안고 계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높은 산꼭대기에 고이지 않습니다. 내 힘과 교만이 다 빠져나가 비틀거리는 그 패이고 낮아진 골짜기로 하늘의 은혜가 흘러 내려옵니다.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산꼭대기에서 우리에게 비전을 주시지만, 그 비전에 합당한 사람으로 다듬어 가시는 곳은 오직 고요하고 깊은 골짜기이다.”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내가 가장 무력해진 그 골짜기에서 눈물을 흘리며 당황하고 떨 때, 목자 되신 주님은 내 옆에서 나를 지키시며 나를 안위해주십니다. 그러니까 인생 중에 하나님과 내가 가장 가까이 있을 때는 다름 아닌 내가 사망의 음침하고 위험한 골짜기에 처해 있을 때입니다.
즉 골짜기는 사실 하나님과 내가 가장 친숙해지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고로 인생의 깊은 골짜기에 처했을 때,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을 부르십시오.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 골짜기는 한숨만 쉬다 끝나는 무덤이 아닙니다. ‘에스겔의 골짜기’를 기억해 보십시오. 에스겔이 환상 속에 본 골짜기는 바싹 말라버려 아무런 소망도 없는 뼈들만 가득했던 절망의 골짜기였습니다.
그러나 그 절망의 골짜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성령의 생기가 불어오자, 그 마른 뼈들이 서로 연결되어 강력한 군대로 일어섰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이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처럼 가정에 사랑이 마르고, 재정이 마르고, 찢긴 마음의 상처로 인해 기쁨이 마르고 황폐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생기가 불어오면, 당신이 흘린 그 눈물의 골짜기는 도리어 환호와 승리의 골짜기가 될 것입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다윗이 소년 시절 때에 아버지 심부름으로 형들이 있는 전쟁터인 ‘엘라 골짜기’에 가보니 블레셋의 장수인 거인 골리앗이 그 골짜기에서 이스라엘 군대와 하나님을 조롱하고 모독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과 함께 하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골리앗을 무찔렀습니다. 조금 전에는 그 골짜기에서 이스라엘 군대가 골리앗에게 심한 굴욕과 패배감에 어쩔 줄 몰라 했는데, 도리어 그 골짜기가 승리와 환호의 골짜기로 바뀌었습니다. 고로 여러분도 골짜기에 처했을 때 오직 하나님의 도움으로 그곳을 위대한 승리의 현장으로 바꾸시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성경에 보면 절망의 골짜기를 희망의 골짜기로 바꾼 유명한 사건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여호사밧 왕 시절에 모압과 암몬 그리고 에돔이 연합군을 형성하여 유다를 침략해왔습니다. 적군이 너무 강력해 유다 나라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단지 하나님께 금식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예복을 입은 찬양대를 조직해 앞서 행진하며 하나님을 송축했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적 연합군이 내분이 일어나 서로를 죽이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유다 사람들이 적진에 가보니 적군이 모두 죽고 시체만 쌓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온 재물과 보물과 의복이 산더미처럼 많았습니다.
유다 사람들은 그것을 전리품으로 가지고 오는 데에만 사흘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나흘째에 그 골짜기에서 하나님을 크게 송축했습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브라가(송축) 골짜기’라고 불렀습니다.(대하20:26) 보십시오. 적들이 쳐들어와 절망과 죽음의 골짜기가 될 뻔했는데 도리어 그 골짜기가 승리와 더불어 하나님께 크게 찬양을 드리는 영광의 골짜기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어떤 인생의 골짜기를 지나고 계십니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입니까, 바카의 눈물의 골짜기입니까, 아니면 마른 뼈만 가득한 황량한 에스겔의 골짜기입니까? 혹은 이국땅에서 겪는 외로움과 실패의 골짜기입니까? 이때 기억하십시오. 그 골짜기는 우리가 평생 집을 짓고 머물러야 할 ‘정착지’가 아니라, 목적지를 향해 잠시 통과하는 ‘길목‘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그 어두운 골짜기를 먼저 걸어가셨고, 지금 당신의 바로 곁에서 손을 잡고 계십니다. 고로 낙심하여 주저앉지 마십시오. 믿음의 발걸음을 계속 옮기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의 아골 골짜기를 소망의 문으로 바꾸실 것이며, 그 눈물의 골짜기 한가운데서 기적 같은 생수의 샘을 터뜨려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고난의 골짜기를 다 지나고 났을 때, 우리는 모압 연합군을 무찌르고 모여 하나님을 찬양했던 여호사밧과 백성들처럼, 감사와 기쁨이 넘쳐나는 ‘브라가(송축)의 골짜기’에 서서 주님을 마음껏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이 소망의 약속을 붙들고 오늘도 내일도 담대히 인생의 골짜기를 통과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 주님, 때로는 이 어두운 골짜기가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많이 낙심했습니다. 세상에 나 혼자만 버려진 것 같아 두려워서 울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골짜기는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가장 깊게 채워지는 거룩한 통로임을 깨닫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멀리 계시지 않고, 내 곁에서 함께 걸어가시는 주님의 손을 꼭 붙잡게 하옵소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시며 눈물 골짜기를 먼저 걸어가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우리가 흘리는 이 아픔의 눈물을 주님의 병에 담아주시고, 괴로움의 ‘아골 골짜기’를 소망의 문으로 바꾸어 주옵소서. 바카의 눈물 골짜기를 통과할 때 하늘의 단비를 내리시고, 은혜의 샘물이 터져 나오게 하여 주옵소서.
이 외국 땅의 골짜기에서도 절망하지 않게 하시고, 마침내 하나님을 마음껏 송축하는 ‘브라가 골짜기‘의 찬양이 우리의 입술에서 터져 나오게 하옵소서. 골짜기의 눈물을 송축의 기쁨으로 바꾸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눈물 골짜기 더듬으면서 나의 갈 길 다 간 후에, 주의 품 안에 내가 안기어 영원토록 살리로다. 열린 천국 문 내가 들어가 세상 짐을 내려놓고, 빛난 면류관 받아 쓰고서 주와 함께 길이 살리.” : 찬송가 492장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