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오늘 우리는 기독교 신앙의 가장 위대한 신비이자, 우리의 삶에서 가장 치열하게 싸워내야 할 과제인 ‘화목’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날의 세상을 보십시오.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는 이념과 세대로 갈라지며, 심지어 주님의 은혜가 넘쳐야 할 교회 안에서조차 오해와 시기, 다툼으로 인해 깊은 상처를 주고받는 일들이 가득합니다.
왜 인간은 이토록 화목하기가 어려운 것일까요? 그 본질적인 원인을 알기 위해서는 인류의 첫 페이지인 에덴동산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신 낙원은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심지어 동물들까지 완벽한 화목을 누리던 공간이었습니다. 아담은 아내 하와를 보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세기 2:23)
이렇게 조건 없는 수용과 완벽한 하나 됨, 그것이 하나님이 설계하신 본래의 화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화목은 죄로 인해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죄를 짓자마자 가장 먼저 일어난 현상은 ‘화목의 깨어짐’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화목이 깨어지자 인간 사이의 수평적인 화목도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죄를 물으셨을 때, 아담은 이렇게 변명합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세기 3:12)
보십시오. ‘내 뼈 중의 뼈’라던 사랑의 고백이 날카로운 책임 전가의 비수의 말로 변했습니다. “저 사람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저 인간 때문에 내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아담의 변명입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그 사람 성격이 이상해서, 그 사람이 나한테 상처를 줘서”라며 아담처럼 끊임없이 남 탓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러한 관계의 균열은 다음 세대에 이르러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미워하여 돌로 쳐 죽이는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그렇게 동생을 죽인 형 가인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그렇게 미운 녀석이 사라졌으니 이제는 마음이 편했을까요? 아닙니다. 도리어 그 정반대입니다.
죽은 아벨이 피를 흘리며 꿈속에 나타나지 않았겠습니까? “형, 왜 나를 죽였어? 내가 그렇게 미웠어?” 하고 나타나니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또한 그 살인 사건을 알고 있는 마을 사람들에게 가인은 얼마나 욕을 얻어먹었겠습니까? 동생을 죽인 놈, 천하에 못된 놈이라는 딱지가 붙어 가인은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가 없어서 결국 이리저리 유리 방황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죄의식에 사로잡혀 평안을 잃고 이리저리 떠도는 가인이 지금 어디 있습니까? 그 옛날 창세기 시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주위에도 있지는 않습니까?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그 사람을 보면서 가인처럼 미워하고, 보이지 않는 돌멩이를 들어 치려는 그 가인이 어딘들 없겠습니까?
그러한 오늘날의 가인들에 대해 본문의 말씀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가인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요일3:12)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자 하나님이 가인에게 물었습니다. ”가인아,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 이때 가인이 오리발을 내밀며 대답합니다. “아- 몰라요.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께 자기의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아- 하나님, 나도 그 일로 인해 지금 굉장히 힘들어요. 그러니 더 이상 말 붙이지 말아요. 사실은 내가 피해자라니까요.”
여러분, 여기서 잠시 생각해봅시다. 왜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까? 보통의 경우 형이 아무리 동생이 미워도 그를 죽이기까지는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가인은 동생을 죽였을까요? 이건 비상식적인 일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 오늘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즉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것은 그 배후에 ‘악한 자’ 즉 사단이 있었다는 겁니다. 여러분, 사단은 사람을 충동하여 상식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악을 저지르게 만듭니다. 그러니까 이 살인 사건은 단순한 동생 아벨과의 성격 차이가 아닙니다.
그 뒤에 사단이 이런 미움과 갈등을 일으키고 급기야 살인까지 저지르게 했다는 겁니다. 저희 가정에서 옛날에 일어난 사건을 하나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저의 어머니가 성령의 은혜를 받고 저도 얼마 전에 성령을 받고 열심히 기도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하루는 밤중에 저의 누님이 택시를 타고 집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면서 택시 기사와 요금 문제에 시비가 생겼던지 운전기사를 향해 막- 욕을 합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횡설수설입니다. 그리고 술을 얼마나 마셨던지 혀가 꼬부라진 소리를 합니다. 어머님이 들을 가치가 없어서 “애야, 씻고 방에 들어가서 빨리 자라.” 하고 타일렀습니다.
그런데 누님이 “응- 알았어.” 하고 밖에 나가더니만 조금 있다가 갑자기 쿵쾅- 소리가 들리며 어머니를 향해 날카로운 소리를 지릅니다. “이년! 죽일 거야.” “뭐야 이거?” 저희가 놀라서 보니까 누님의 손에 식칼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눈빛을 보니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래도 귀신에 사로잡힌 것 같습니다.
이때 저희 어머니가 “아니, 이년아! 니 에미를 죽인다고? 이런 못된 년!” 하고 같이 싸웠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그날 살인 사건이 일어났던지, 큰 부상 사건이 일어나 누군가 병원에 실려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 저와 어머니는 영적인 세계를 알았습니다. “아- 이거 귀신이 역사하는구나!”
그리고 신속히 방문을 걸어 잠그고 합심 기도를 했습니다. “사단아- 물러가라. 딸의 마음속에 들어가 어머니를 미워하게 하고, 어머니를 죽여서 하나님을 믿는 집안에 이런 비극적인 사건을 일으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자 하는 귀신아- 물러가라. 딸에게서 물러가라.”
그렇게 한참을 기도하는데 문밖에서는 누님이 식칼로 방문을 계속 찌르고 욕을 하고 울며불며 난리를 부렸습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말을 횡설수설 늘어놓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자기가 초등학교 때에 어머니가 육성회비를 늦게 주어서 담임선생님한테 반 아이들 앞에서 창피를 당한 것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여러분, 옛날 한국에서는 초등학교 때에 육성회비란 것이 있어서 학생들에게 돈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 돈을 가져오지 않으면 담임선생님이 학생들 손바닥을 때리기도 하고, 창피도 주곤 했습니다. 요즘은 도저히 상상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저의 집안이 워낙 가난해서 저의 어머니가 그 육성회비를 늦게 주어서 누님이 창피를 당하고, 그것이 갑자기 트라우마가 돼서 떠오른 겁니다.
그런데 여기 연세가 드신 할머니 할아버지 여러분, 그 당시에는 대부분 가난한 시절이라, 그렇게 육성회비를 못 내서 담임선생님에게 야단맞는 일이 흔했던 시절입니다. 그게 어머니를 식칼로 죽일 정도로 큰 죄는 아닙니다. 그런데 귀신이 그 사건의 상처를 부풀렸습니다. 미움이 생기도록 했습니다. 급기야는 어머니를 죽이라고 충동을 일으켰습니다.
자- 이렇게 이야기하니 오늘의 본문에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이유를 알겠지요? 그러니까 그 뒤에 마귀가 역사한 겁니다. 가룟 유다가 스승인 예수님을 은 30냥에 판 것도 마귀가 충동했다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고, 그 후에 가룟 유다가 양심의 가책을 받고 자살해서 죽으라고 충동한 것도 그 뒤에 마귀가 있었습니다.
또한 장인 사울 왕이 사위인 다윗을 죽이려고 계속 쫓아다닌 것도 귀신이 한 짓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마귀와 귀신들은 오늘날 저와 여러분의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어디에서든지 이런 식으로 역사합니다. 즉 마귀는 미움을 일으키고, 화목을 깨므로 우리를 힘들게 하고 결국 하늘나라를 깨트리려고 합니다.
그렇게 누님이 어머니를 죽이겠다고 소리를 계속 지르는 동안 우리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기도를 했습니다. 마귀 귀신을 쫓는 기도입니다. 그렇게 한참을 기도하자 방문에서 소리가 납니다. “엄마, 문 열어봐. 내가 왜 이러지?” 아- 드디어 귀신이 나갔습니다. 독한 미움의 눈빛이 풀렸고, 소리도 정상적인 딸의 목소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금방 평온을 되찾았습니다.
여러분, 마귀의 헬라어 원어는 ‘디아볼로스’라고 합니다. 그 뜻은 ‘이간질하는 자, 분리하는 자’입니다. 마귀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아담을 찢어놓았고, 아담과 하와를 이간질했으며, 가인의 마음에 미움을 불어넣어 자기 동생을 돌로 치게 했습니다. 지금은 말세입니다. 마귀는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미친 듯이 발악하고 있습니다.(계12:12).
특히 주님의 몸 된 교회가 화목하여 천국을 누리는 꼴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마음에 사소한 오해를 심고, 말 한마디를 왜곡하게 하여 ‘교회 안의 가인들’을 만들어냅니다. 즉 성도 간의 불화는 단순한 감정싸움이 아니라, 교회를 깨뜨리려는 마귀의 강력한 영적 공격입니다.
또한 디모데후서 3장에 말세에는 성도 간의 화목이 치열한 영적 전쟁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디후3:1-3) 즉 말세에 화목을 깨트리는 특징은 극단적인 ‘자기 사랑’입니다.
특히 말세는 극한 이기주의로 내가 우상이 되는 시대입니다. 나만 소중하고 내 자존심만 중요하니 타인을 용납할 공간이 없습니다. 또한 말세에는 ‘무정하여 원통함을 풀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한 번 서운하면 절대로 마음을 풀지 않고 빗장을 걸어 잠급니다. 그리고 그것을 계속 남의 탓으로만 돌립니다. 그러니 서로 좋다가도 쉽게 원수가 되고 맙니다.
이렇게 마귀 귀신이 화목을 깨트리고, 인간성의 타락이 심화하므로 하나님 없이는 그 문제가 근본적인 해결이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화목제물로 보내셨습니다. 이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4:10)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을 때,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와 화목하기 위해 상상할 수 없는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바로 자신의 전부이자 심장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제단 위에 희생제물로 내던지신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바치려 칼을 들었을 때,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떠하셨겠습니까? 자식을 제단에 묶어놓은 아비의 심장은 피눈물로 뒤틀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 같은 죄인들과 다시 화목하시겠다고, 자신의 독생자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에서 채찍에 맞아 살점이 뜯겨 나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죽어갈 때, 그 얼굴을 외면하셨습니다. 즉 자기 자녀를 죽여 원수를 살리신 것입니다.
그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 아버지가 독생자를 찢어 만드신 화해의 다리입니다. 참된 화목은 오직 그 거룩한 희생 위에서만 세워집니다. 그런데 그 아들의 피 값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지금 교회 안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습니까? 주님이 독생자를 죽이시면서까지 화목하게 만들어놓은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서, 우리는 내 자존심 하나 꺾지 못해 형제를 미워하고 담을 쌓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의 목숨과 바꾸신 저 귀한 영혼을 향해, 내가 가인처럼 미워하고 비난의 돌을 던질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가슴에 다시 한번 못을 박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주님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겁니다. 아들의 피로 산 화목을 내 자존심 때문에 짓밟는 것, 이보다 더 무서운 배은망덕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엄히 명령하십니다.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24)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아들의 핏값으로 산 화목을 팽개친 채, 마음속에 미움을 가득 품고 드리는 그런 가인의 제사는 하나님이 거절하십니다. 고로 ”내가 왜 먼저 사과해야 합니까? 저 사람이 원인 제공자인데요.”라며 아담처럼 버티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의로워서 먼저 독생자를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원수 되었을 때 하나님이 먼저 다가오셨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받은 성도는 자존심으로 사는 자가 아니라, 은혜로 사는 자입니다. 고로 오늘 이 시간, 상대방은 죽든지 말든지, 주님의 몸이신 교회가 망하든지 쓰러지든지 나만 살겠다고 하는 그 자존심의 왕좌, 아집과 고집의 왕좌에서 당장 내려오십시오.
하나님이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그 지독한 사랑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미움의 자리에 머물 수 없습니다. 내 안에 마귀가 심어놓은 가인의 돌멩이를 내려놓고, 먼저 손을 내밀어 화해함으로 하나님의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해 드리는 하나님의 귀한 자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찢으시기까지 우리와 화목하기를 원하셨던 그 피눈물 나는 사랑을 잊고 살았습니다. 아들의 목숨과 바꾸신 지체들을 내 이기심과 자존심 때문에 미워하고 정죄하며, 하나님 아버지의 가슴에 다시 못을 박았던 무서운 죄를 통곡하며 회개합니다.
이 시간 내 안의 가인 같은 분노와 아담의 변명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옵소서. 예배드리기 전에 먼저 사과하고, 먼저 용서할 수 있는 십자가의 용기를 주옵소서. 내 자존심을 깨뜨려 주님의 몸 된 교회의 화목을 지켜내게 하옵소서. 우리를 위해 화목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