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나는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이며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 떠도나이다
여러분이 이곳 캐나다에 처음 도착했을 때를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비행기가 캐나다에 도착하여 공항 문을 나서던 순간의 그 낯선 분위기, 익숙하지 않은 영어 발음과 영어 간판들, 눈 앞에 펼쳐진 넓은 땅과 동시에 밀려오던 막막함. 그리고 이 땅에서 지금까지 외국인으로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을 겪었을 겁니다.
그중에 가장 힘든 것은 무엇입니까?” 혹시 이런 답들이 나오지 않을까요? “언어가 안 돼서 답답합니다” “열심히 일해도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많이 외롭습니다.” “아이들은 점점 멀어지는 것 같고,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느낌입니다” “내가 이곳에 잘 온 건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질문과 답변은 어제오늘 처음 나온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이미 이 질문들을 알고 있었고, 같은 질문을 던졌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성경에 기록해 두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신앙의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즉 그들의 이야기는 바로 외국 땅에서 사는 저와 여러분들의 이야기요, 그들의 간증은 바로 저와 여러분의 간증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성경에서 외국인과 나그네의 인생을 살았던 인물 중에 대표적으로 세 사람의 인생을 살펴보면서 같이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 아브라함
성경에서 가장 대표적인 이민자는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조상이라고 하고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12:1)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외국으로 가라고 하시면서 비자도 주지 않았고, 정착 계획도, 안정된 미래도 주지 않으셨습니다.
단 하나 주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여기 캐나다 땅에 올 때 나름대로 이것저것, 많은 것을 챙겨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까먹고 챙겨오지 않는 아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아브라함도 일단 자기가 가진 재물을 다 챙겨서 외국 땅에 갔습니다. 그러나 그 땅에 기근이 들자, 그 가져왔던 재물이 다 없어졌습니다. 결국 먹고 살기 위해 그는 또다시 애급으로 2차 이민을 갔습니다. 그러나 그곳 애급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그곳에서 큰 사건이 터졌습니다. 아름다운 아내 사라를 애급 왕 바로에게 빼앗겼습니다.
아- 세상에! 이게 뭔 일입니까? 여러분, 우리들도 이 외국 땅에서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돈이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병이 들어 아플 때도 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또 다른 큰 문제가 발생할 때가 있습니다. 아내와 남편과의 문제가 터질 때가 있습니다. 이때 이 외국 땅에서 누가 나를 도와줄 마땅한 사람도 없습니다.
여러분, 이때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십시오. 나를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외국 땅으로 가라고 하신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그리고 그 하나님에게 솔직하게 기도하십시오. 아브라함도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당신이 이곳에 가라고 하셔서 왔는데, 돈은 다 떨어졌고요. 먹고 살기 위해 애급까지 왔는데, 여기서 이런 큰 문제를 만났습니다. 이 문제 좀 해결해 주세요.”
그렇게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자 하나님이 애급 왕 바로의 집안에 큰 재앙을 내렸습니다. 바로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즉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돌려보냈습니다. 파괴된 가정이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거의 파멸 직전까지 갔다가 다시 일어났습니다.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었고, 탄식이 찬양으로 바뀌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들도 이곳 외국 땅에서 별별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를 하십시오. 하나님은 외국 땅으로 가는 사람들에게 특별히 약속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약속이냐 하면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여호수아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1:9) 예수님도 우리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아브라함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그는 믿음으로... 천막을 치고 나그네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며 머물러 살았습니다.”(히11:9, 공동번역)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히11:13-14,16)
여러분, 아브라함은 평생 텐트를 치며 ‘임시 거주자’처럼, 나그네처럼 살았습니다. 왜입니까? 다름 아닌 그가 영원히 거할 처소와 그의 시민권은 이 땅이 아니라 하늘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에도 다윗은 말합니다. “나는 주와 함께 있는 외국인과 나그네라.”(시39:12)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이곳 캐나다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고 있습니다.
2. 요셉
성도님들 중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목사님, 제가 이곳에 온 것은 스스로 원해서 온 것이 아닙니다. 남편이(아내가 혹은 부모님이) 캐나다에 가자고 우겨서 반강제로 끌려온 겁니다.” 예- 그럴 수 있습니다. 바로 요셉이 그랬습니다. 요셉은 애급 땅에 스스로 원해서 온 것이 아닙니다.
인신매매를 당하여 강제로 끌려온 ‘강제이민자’입니다. 그것도 노예의 신분으로 끌려왔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요셉은 부자 아버지 집에서 호의호식하며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편안히 지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환경이 바뀌었습니다. 음식도 바뀌었습니다. 그동안 좋은 음식을 먹었던 요셉은 애급에서 노예의 음식을 먹어야 했습니다.
아- 입맛에 도저히 맞지 않습니다. 이것 역시 저와 여러분들의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제가 28년 전 여기 캘거리 땅에 처음 왔을 때, 이곳에는 제대로 자장면을 만드는 중국 식당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름 휴가 때에 밴쿠버에 있는 ’두꺼비‘ 식당에 가서 자장면을 먹고 오곤 했습니다. 지금은 교회 바로 옆에 ’산동반점‘도 있고, 많은 한국식당이 있으니 캘거리 참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여기 캐나다에 살면서 많은 분들이 이런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목사님, 말이 안 통하니까 제가 바보가 된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말도 역시 요셉이 외국 땅 애급에 처음 끌려왔을 때의 고백과 같습니다. 그 역시 애급 말을 하나도 못 했습니다. 완전 바보 취급을 받았습니다. 요즘은 스마트폰 번역기를 사용하면 어느 정도 언어 문제가 해결되니 그것도 참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한국에 있었을 때는 자기의 전공을 살려서 나름대로 자기가 원하는 직업을 가지고 나름대로 보람 있게 일을 했습니다. 월급도 제법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곳 캐나다 땅에 와서는 대부분 자기가 원하는 전공, 자기가 바라는 좋은 직업을 갖지 못합니다.
이것 역시 요셉의 간증입니다. 그는 원치 않는 노예의 일을 해야 했습니다. 월급도 없었습니다.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죽도록 계속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외국 땅에서 강간범이라는 억울한 누명까지 뒤집어쓰고 3년간 감옥살이도 했습니다. 아주 힘든 이민 생활이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도 혹시 이곳 캐나다에서 요셉처럼 감옥살이를 겪어보지는 않으셨지요? 어때요? 그때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아주 힘들었지요? 굳이 감옥살이가 아니더라도 여기 캐나다가 마치 창살 없는 감옥처럼 느껴지지는 않으셨나요? 특히 상황이 아주 안 좋아서 이곳을 탈출하고 싶은데 마지못해 이곳에서 살고 있다면, 이곳이 마치 감옥살이처럼 힘들게 느껴지기도 할 것입니다.
즉 외국 땅에서의 인생은 요셉처럼 누구나 힘든 인생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요셉의 상태를 이렇게 반복적으로 정의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었더라.”(창39:2) 여러분, 요셉의 형통은 애굽 말을 유창하게 잘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학벌과 신분이 좋았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다름 아닌 하나님이 함께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낯선 환경도, 영어를 잘하지 못해도, 이 외국 땅이 저와 여러분의 사명의 무대가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비록 나는 이곳에 오는 것을 원치 않았을지라도, 하나님은 이곳에서 내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에 나를 이곳으로 부른 것입니다. 아멘이지요?
그 사명 중 하나는 바로 그들을 살리는 겁니다. 당시 애급 지방과 중동 지역에는 7년 풍년이 있었고, 뒤이어 7년 흉년과 기근이 들이닥쳤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을 위험에 처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요셉을 들어 사용하셨습니다. 7년 풍년과 이어질 7년 기근을 꿈을 통해 미리 계시받은 요셉은 7년 풍년 때에 산더미 같은 양식을 비축해놓았습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살았습니다. 요셉의 가족들도 살았습니다. 단지 자신들만 잘 먹고 잘산 것이 아니라 그 가족 중에는 장차 예수님의 조상이 될 유다 지파도 있었습니다. 만약 유다 지파가 기근으로 인해 죽었다면 그 후손인 예수님의 탄생도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고, 그러면 저와 여러분들도 구원받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니까 요셉이 원치 않는 강제이민자가 된 것은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이었습니다. 이것 역시 바로 저와 여러분들의 간증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곳 캐나다 땅에서 요셉처럼 사람을 살리라는 사명을 맡았습니다. 그 죽은 영혼들에게 예수님을 믿게 하므로 그들을 살려내야 합니다. 천국 백성이 되게 해야 합니다. 할렐루야!
3. 다니엘
다니엘은 오늘날로 따지면 전쟁 난민이요, ‘엘리트 이민자 유학생’입니다. 성경은 다니엘에 대해 흠이 없고, 아름다우며, 모든 재주를 통달하며, 지식을 구비하고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거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한편 그에게 신앙의 시험이 다가왔습니다.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인 왕의 진미를 먹으라는 겁니다.
외국 땅에 거하는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신앙의 시험이 따를 수 있습니다. 성경은 ‘탐욕은 곧 우상숭배’라고 했습니다. 즉 외국 땅에서 돈 번다는 핑계로, 혹은 이런저런 이유로 신앙을 포기하라는 시험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이런 시험 앞에서 담대했습니다. 왕의 진미를 먹지 않아도 때깔이 더 좋았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서 언어도 바뀌고, 이름도 바뀌고, 문화도 바뀌고, 교육도 바뀌고, 신앙을 타협하라는 압력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신앙만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이곳 캐나다의 직장과 학교에서 어느 곳에서나 신앙을 잃으면 안 됩니다. 신앙인으로서 정직을 포기하면 안 됩니다. 자신의 신앙을 사람들에게 숨겨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은 외국 땅에서도 신앙의 절개를 지킨 다니엘을 들어 사용하셨습니다.
특히 다니엘은 아무리 바빠도 하루 세 번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왕이 아닌 다른 신에게 기도하면 사자 굴속에 넣는다는 왕의 엄한 명령이 있었지만 다니엘은 하나님과 기도하는 시간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다니엘은 사자 굴속에 던져졌지만, 하나님은 사자굴 속에서도 그를 지켜주셨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이 사자굴 속에서도 살아나온 기적을 본 왕과 백성들이 모두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들은 외국 땅 어디에서든지 신앙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기도의 시간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더 나아가 내 신앙의 모습을 그들에게 충실하게 나타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다니엘을 사자 굴속에서 지켜주신 것처럼 나와 내 가정을 지켜주실 수 있습니다. 나를 통해 그들도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자- 오늘은 아브라함, 요셉, 다니엘의 이민 생활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이들의 이민 생활의 공통점은 단순한 ‘이주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낯선 외국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보여주는 신앙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이들 세 사람의 이민 생활의 공통점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이들의 이민 생활은 하나님의 부르심 혹은 섭리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둘째, 외국 땅에서의 정체성의 위기 속에서도 그들은 신앙의 중심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셋째, 외국에서 오히려 하나님이 함께하심이 드러나므로 그들을 통해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을 믿게 했습니다.
넷째, 그들의 이민 생활은 개인의 생존을 넘어 가족을 살리는 공동체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즉 이민자는 피난자가 아니라 많은 사람을 위해 특별히 보냄을 받은 사명자입니다.
다섯째, 이들은 모두 외국 땅에서 완전한 정착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땅은 우리가 영원히 거할 장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이민 생활은 타국에서 뿌리내리는 삶이 아니라, 타국에서 하나님을 증명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여기 캐나다 땅에 온 목적은 단지 이곳에서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곳에서 영원히 정착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 땅은 주님과 함께 외국인과 나그네처럼 살면서 지나가는 땅이고, 우리는 영원한 본향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땅만 바라보고 사는 그들에게도 하늘의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고, 그들에게도 영원한 본향이 있다는 것을 알리며, 그들도 본향을 향해 나아가는 이 영광스러운 대열에 합류시키기 위함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히13:14)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빌3:20) 아무쪼록 주님과 함께 이 땅에서 나그네와 외국인으로 살아가면서 보다 보람찬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주님, 우리는 이 땅에서는 외국인이요 나그네이지만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외국인이요, 주님과 함께 여행하는 나그네임을 믿습니다. 이 외국인 인생, 나그네 인생을 살면서 주님과 같이 주님이 원 하시는 그 일을 하게 하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