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9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여러분, 혹시 지옥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이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시는 분이 있지는 않습니까? “목사님, 제가 지금 살고 있는 것 자체가 지옥입니다.” 이렇게 말하시는 분에게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물론 인생의 삶이 누구나 쉽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렇게 자신의 현재 상황이 지옥 그 자체라고 할 정도면 도대체 이 사람은 얼마나 힘든 겁니까?
아마 최악 중의 최악이겠지요. 우리가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면 간호사가 환자에게 통증 지수가 1-10까지 중에 어느 정도냐고 묻습니다. 이 경우 자신의 삶이 지옥 그 자체라고 하신 분은 분명히 통증 지수가 10일 겁니다. 통증 지수 10은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중에 가장 극심한 통증입니다.
보통 치통의 경우가 통증 지수 5정도입니다. 말기 암환자가 느끼는 통증은 6정도이고, 여성이 처음 출산할 때의 고통은 7정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통증 지수 10에 해당되는 가장 큰 고통은 불속에서 온몸이 타는 고통 즉 ‘작열통’입니다. 이런 통증을 느끼는 사람의 특징은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차라리 죽고 싶다고 합니다.
예수님도 지옥의 고통을 말할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막9:48-49) 즉 가장 큰 통증인 불에 온몸이 타는 작열통이 영원히 지속되는 곳이 바로 지옥이라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이제까지 인생을 살면서 어느 정도의 통증을 경험해보셨습니까? “아- 목사님, 너무나 끔찍해서 말하기도 싫고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아직도 몸서리가 쳐집니다.”라고 하시는 분들조차도 아마 통증 10에 해당되는 온몸이 타는 작열통까지는 겪지 않으셨을 겁니다.
종종 우리가 감사하는 것 중에 이런 감사를 해보신 분들이 제법 있을 겁니다. “휴- 다행이다. 예수님 믿고 지옥가지 않으니 정말 다행이다. 주여- 저를 지옥에서 건져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지옥이란 단어는 가장 고통스러움의 대명사입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때론 인생의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인 지옥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습니다.
즉 지옥은 먼 나라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의 인생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의 사람들 중에도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죽고 싶다고 말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동방의 의인인 욥도 그랬고,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인 모세도 그랬고, 능력의 선지자인 엘리야도 그랬습니다.
여러분의 경우는 어떤가요? 아마 한두 번쯤은 죽고 싶다고 생각해 보신 분들이 있을 겁니다. 혹시 최근에 지옥을 느끼신 적이 있지는 않습니까? 육체적 고통이 아니더라도 정신적으로 혹은 영적으로 지옥의 고통을 느끼고 있지는 않습니까? 특히 만물보다 부패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고 했는데,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지옥을 경험해보지는 않으셨습니까?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미혼자 분들과 이미 결혼하신 기혼자 분들의 경우에 둘 중 누가 더 지옥을 많이 경험해봤을까요? 뭐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미 결혼해 보신 기혼자 분들이 지옥을 더 많이 겪었을 겁니다. 결혼하신지 얼마 되지 않은 신혼부부의 경우는 결혼생활이 지옥이라고 하면 잘 이해가 안 되실지 모릅니다.
그래서 제가 결혼에 관한 격언이나 속담을 좀 찾아보았는데, 이런 말들이 있습니다. “결혼은 판단력 부족이고, 이혼은 인내력 부족이고, 재혼은 기억력 부족 때문이다.” 즉 결혼 이혼 재혼 모두를 부정적으로 보는 냉소적인 격언입니다.
또 다른 격언입니다. “결혼은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둘이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 즉 결혼 생활의 어려움을 통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아픔을 겪어 본 사람의 솔직한 고백입니다. 또 다른 격언입니다. “결혼 전에는 눈을 크게 뜨고, 결혼 후에는 반쯤 감아라.”- 벤자민 프랭클린.
즉 결혼 전에는 상대방을 잘 살피고, 결혼 후에는 상대방의 단점을 덮어두고 살라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이 더욱 힘들다는 겁니다. 또 다른 격언입니다. “결혼은 일체의 것을 삼키는 요물과 부단히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즉 결혼 생활이 매우 힘들다는 겁니다. 특히 귀신이 많이 틈탈 수 있기에 결혼하면 귀신과의 치열한 영적 싸움을 계속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지고 유명한 속담이 있습니다. 뭐지요?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다.” 물론 이 말은 창세기에 나타난 성경의 말씀하고는 정반대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시고 혼자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시며, 아담에게 하와라는 돕는 배필을 주시고, 그 둘을 짝으로 맺어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창세기적으로 볼 때 결혼은 큰 축복이고 행복입니다. 여러분들도 이 말에 아멘이지요? 결혼에 관한 유명한 말을 하나만 더 소개할까요?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더래요~ 그 말처럼 새빨간 거짓말도 세상에 없다.”-리브맨 웬디 리브만.
여러분, 부부는 하나님이 ‘둘이 한 몸’(창2:24)이라고 할 정도로 가장 가까운 관계입니다. 그런데 그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깊은 상처를 주기 시작하면, 그곳에 지옥이 펼쳐집니다. 즉 지옥은 구만리 하늘 멀리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부부가 함께 사는 그곳이 바로 지옥이 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잠21:19) 물론 결혼해서 다들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부부의 관계가 틀어져 지옥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 빠르게 알아볼까요.
첫째, 대화가 끊어질 때입니다. 입은 열려 있으나 어떤 사건으로 인해 마음이 답답하고 대화가 없어집니다. 그리고 가끔 입에서 나오는 말이 날카로운 칼이 되어 서로를 찌릅니다. 아- 아픕니다. 많이 아픕니다.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여기가 지옥입니다.
둘째, 상처의 반복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가 있고 죄를 짓고 사는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한 지붕 밑에서 가까이 지낼 수밖에 없는 부부의 경우 쉽게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이때 그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았는데, 아직 용서와 화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도 않았는데, 또 다른 상처가 생기면 그 상처의 골은 지옥의 골짜기처럼 더 깊어지고 맙니다.
셋째, 존재 자체의 부정입니다. “당신과 사는 게 지옥이야.”라는 말이 실제 감정이 되고, 그렇게 싸우는 얼굴 표정은 서로를 잡아먹고 죽일듯한 사나운 짐승의 모습으로 바뀌게 됩니다. 순간 그 사람이 지옥에 있는 귀신처럼 느껴집니다. 그에게서 빨리 도망가고 싶습니다. 지옥에서 탈출하고 싶습니다.
넷째, 정서적 단절입니다. 분명 같은 집, 같은 방, 같은 침대인데 마음은 수천 Km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너는 너고 나는 나입니다.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나 먼 당신입니다. 가장 가까이 있지만 가장 멀리 떨어져 사는 사이가 됩니다. 결혼을 했지만 결혼하지 않을 때보다 훨씬 더 고독합니다. 외롭습니다.
다섯째, 역할의 무너짐입니다. 남편은 더 이상 아내의 보호자가 아니고, 아내는 더 이상 남편의 돕는 자가 아니며, 서로에게 부담과 짐이 됩니다. 상대방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불행하게 하고, 내 인생을 망치는 주범이 됩니다. 이런 남편, 이런 아내, 이제 더 이상 필요가 없습니다. 좀 알아서 사라져 줬으면 좋겠습니다. 근데 이게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같은 집에 살다 보니 계속 왔다 갔다 하고 어른어른 거립니다. 아- 여기가 지옥입니다.
그리고 부부 관계뿐만 아니라 기족 간에 지옥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피로 연결된 가족은 축복입니다. 가정은 사랑과 위로와 회복의 장소입니다. 그러나 그 가족이 깨지면 인간은 안식처를 잃고 고아와 같은 처량한 신세가 됩니다. 가족이 깨지면 가장 잔인하고 가장 깊고 가장 오래가는 지옥이 됩니다.
부모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자녀는 평생 상처를 안고 살고, 자녀로부터 존중을 받지 못하는 부모는 외로움과 박탈감에 노년을 보내게 됩니다. 또한 형제간에 질투와 경쟁은 서로를 파괴하게 됩니다. 그러나 가족끼리는 멀리 도망을 갈 수도 없으니 여기가 지옥입니다. 예수님도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10:36)고 했습니다. 왜 이렇게 가까운 부부, 가까운 가족, 가까운 이웃과 친구끼리 원수가 되고 지옥이 될까요?
다름 아닌 가까울수록 인간의 불완전함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먼 데서 사는 사람, 어쩌다 한 번 보는 사이라면 그 지옥 같은 사람을 당분간 안 보면 됩니다. 즉 지옥 탈출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부부와 가족 혹은 늘 봐야 하는 사람들과 갈등이 생기고, 감정이 상하고, 그 감정과 상처의 골이 깊어지면 그곳을 지옥이라고 합니다.
즉 그 사람을 어쩔 수 없이 또 봐야 하고, 너가 죽든지 내가 죽든지 해야만 관계가 끊어질 정도인데, 결국 하나가 죽기 전에는 탈출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그곳이 지옥이 되고 맙니다. 여기 캐나다 땅에 이민 와서 살게 되면 힘든 것이 바로 이겁니다. 이곳은 탈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때로는 삶이 피곤하고 힘들어서 좀 쉬고 싶어도 쉴 수 없고, 여기를 잠시 떠나고 싶지만 떠날 시간과 여유가 없습니다. 더구나 캘거리는 탈출하기가 더욱 쉽지 않습니다. 탈출해봤자 위에는 여기 보다 더 추운 동네이고, 아래는 미국 국경이라 탈출 불가능이고, 동으로는 끝없는 광야고, 서쪽으로는 로키 산맥이 가로 막혀 있습니다.
게다가 캘거리는 추운 겨울이 6개월 간 지속되는 동네입니다. 탈출해봤자 추워서 얼어 죽기 딱- 쉽습니다. 이때 가까운 사람이 서로 심히 미워하는 사이라면 그곳이 바로 지옥이 되고 맙니다. 더구나 가까운 사람, 신뢰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면 더욱 고통스런 지옥이 펼쳐집니다.
여러분, 지옥은 죽은 후에만 가는 곳이 아닙니다. 현재 내가 사는 곳이 지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기 좋다고 하는 여기 캐나다도 지옥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지옥의 고통을 겪고 힘들게 사는 우리들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단지 우리에게 윤리와 도덕만을 가르치는 분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종교 의식으로 우리들을 옭매는 분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자유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지옥에서 우리들을 건지시는 분이시고, 그 지옥조차 천국으로 바꾸시는 분입니다. 여러분, 혹시 지옥의 고통을 느끼며 힘들어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잊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당신을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길 수 있는 유일한 구원자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놀라운 평안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시며, 당신을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으신 분들은 저의 이 말이 그저 목사님이라는 직업을 가진 분의 형식적인 멘트로 들릴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확신합니다. 아니-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 분은 지옥에서 천국을 만들 수 있는 분입니다. 그 분이 있는 곳이 천국이고, 그 분이 없으면 지옥입니다. 아무쪼록 예수님과 함께 살면서 지옥도 천국으로 바뀌고, 행복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때로는 우리가 여기서 지옥의 고통을 겪습니다. 그래서 너무나도 힘듭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말고 절망하지 말게 하시옵소서. 천국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과 함께 지옥을 이기며 천국을 만들어 가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