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또 위로해 주옵소서.

날짜: 
2025/10/25
말씀: 
고후1:3-7
말씀구절: 

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6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7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설교: 

어린아이나 청년들이나, 어른이나 노인이나 삶이 지치고 힘들고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이때 위로가 주어지면 다시 힘을 얻고 전진할 수 있지만, 제 때에 위로가 주어지지 못하면 삶은 더욱 고달파지고, 낙심과 절망이 더욱 깊어질 수 있습니다. 더구나 외국 땅에서의 이민생활은 위로가 더욱 절실히 필요한 곳입니다.

오늘은 위로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며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먼저 세상적인 위로에 대하여 알아봅시다. 하나님 없는 돈, 술과 각종 오락, 명예와 지위, 혹은 여행과 성공 등은 잠시의 고통을 달래줄 수 있지만 참된 위로는 아닙니다. 이런 세상적인 위로의 특징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① 잠시뿐인 위로입니다. 모세가 애급의 모든 부귀영화를 거절한 이유는 그것이 잠시 죄악의 낙이었기 때문입니다.(히11:25) 세상 위로는 잠시 기분을 바꾸고 좋게 할 수는 있지만, 인생을 통째로 바꾸지는 못합니다. 세상적인 쾌락은 즉각적이고 강력한 위로처럼 보이지만 오래 가지 못하고, 공허와 더 큰 갈증을 남기게 됩니다.

② 마음을 속이는 위로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말합니다.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렘6:14) 세상 쾌락은 고통의 뿌리를 치료하지 못하고, 단지 겉만 덮는 위로라서 진짜 평강이 아니고, 진짜 치유가 안 됩니다. 결국 재발되고 맙니다.

③ 더 큰 속박을 가져오는 위로입니다. 솔로몬이 세상 쾌락으로 위로를 삼아 일생을 살아보았지만, 결국 그의 결론은 “헛되고 헛되며 바람을 잡는 것이다.”(전2:11)고 고백했습니다. 세상 쾌락이나 오락은 처음에는 위로 같지만, 나중엔 점점 중독과 공허만 남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세상 위로를 그토록 찾을까요? 그 이유는 눈앞의 고통을 빨리 잊고 싶어서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옆에서 부추기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기다림보다 쉽고 빠른 길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세상 위로에 길들여지면 자연히 하나님의 위로는 멀리하게 되고, 계속 세상 위로만 찾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 위로와 하나님의 위로를 좀 더 예를 들어 비교해봅시다.

① 세상 위로는 진통제나 마약과 같습니다. 잠깐 통증을 가려주지만 병은 고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위로는 치료제입니다. 하나님은 근본 원인을 만지시고, 영원한 소망으로 채우십니다.

② 세상 위로는 불꽃놀이와 같습니다. 불꽃은 화려하고 환상적으로 보이지만 금세 꺼지고 맙니다. 반면 하나님의 위로는 햇빛과 같습니다. 햇빛은 때로는 눈이 부실 수 있지만, 모든 생명체를 살리는 원동력입니다. 고로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따스한 위로의 햇볕이 있어야 살 수가 있습니다.

③ 세상 위로는 카페인 음료와 같습니다.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면 즉시 힘이 솟는 것 같지만, 그 후엔 곧 불안해지고 더 피곤해집니다. 즉 각성제는 순간적인 힘을 주지만 영혼은 더욱 탈진이 되고 맙니다. 반면 하나님의 위로는 생수와 같습니다. 생수는 큰 자극은 아닐지라도 근본적으로 갈증을 해결해줍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험한 세상 사느라고 심히 탈진한 수가성의 우물가의 한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3-14)

즉 세상 위로는 우리를 더욱 목마르게 하지만, 하나님의 위로는 영혼을 적셔줍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힘들고 지칠 때 어떤 위로의 컵을 들고 싶습니까? 세상 위로인 카페인 드링크가 담긴 컵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위로인 생수가 담긴 컵입니까? 그리고 인생을 살다 보면 그 어떠한 것으로도 도저히 위로가 안 될 때가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그런 경우를 살펴봅시다.

① 욥 : 욥은 너무나 큰 고난을 당했습니다. 동방의 의인이었던 그가 모든 재산을 오랑캐에게 약탈을 당했습니다. 다 키워 놓은 7남 3여, 아들딸들이 함께 모여서 잔치하며 식사하는 중에 그만 강풍이 불어와 집의 기둥을 쳤습니다. 그로 인해 집이 무너져 모든 자녀가 압사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본인 자신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악창이 들어 너무나 큰 통증으로 인해 죽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심히 조롱합니다.

심지어 아내까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독설을 내뱉습니다. 욥이 큰 환난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욥을 위로하려고 멀리서 친구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욥을 보니까 너무나 비참한 그의 모습에 도저히 그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가 없었습니다. 단지 그들은 칠 일간 아무 말로 하지 못하고 욥의 옆에서 그저 앉아만 있었습니다.

② 야곱 : 야곱은 가장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아버지의 심부름을 가다가 짐승에 찢겨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큰 슬픔에 잠겼습니다. 다른 아들들이 아버지를 위로하려고 했지만 야곱은 그 위로를 거절하며 이렇게 한탄합니다. “내가 슬퍼하며 스올(음부)에 내려가 아들에게 가겠노라.”(창37:35)

③ 예레미야 : 예레미야 선지자는 자기 나라가 멸망당할 때 많은 눈물로 그 장래 일을 예언한 사람입니다. 그가 한 예언 중에 이런 예언이 있습니다.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이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받기를 거절하는도다.”(렘31:15)

예레미야는 자기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 군사들에 의해 많이 죽고, 그 남은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거나, 자기자녀가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는 어머니의 슬픔은 도저히 위로하기가 매우 힘든 상황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녀의 비참한 죽음을 보는 부모의 심정을 어찌 위로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극한 슬픔 속에 빠지면 우리는 어디서 위로를 찾아야 할까요?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으로부터 그 위로를 찾아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 3-4절에 말씀합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위로할까요?

① 하나님의 임재로 위로하십니다. 나를 가장 사랑하시는 위로의 하나님이 나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은 그 자체가 가장 큰 위로입니다. 하나님은 고통의 자리에 나와 동행하시는 분이십니다. 너무나 잘 알려진 ‘모래 위의 발자국’이란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날 밤 나는 한 꿈을 꾸었습니다.

내가 주님과 함께 해변을 걷고 있었고

어두운 하늘을 가로질러

나의 삶의 장면들이 밝게 비쳐져 왔습니다.

나는 각 장면마다 모래 위에

두 사람의 발자국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는 나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것이었습니다.

이윽고 내가 살아온 삶의 마지막 장면이

내 앞에 펼쳐졌을 때

모래 위에 새겨진 발자국은

한 사람의 것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때는 나의 삶 중에서

가장 힘들고 슬픈 순간이었습니다.

이 사실로 인해 나는 늘 가슴 아파 했고,

그래서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따르면

주님은 항상 저와 동행하며 친구가

되어 주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제 삶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때는

왜 한 사람의 발자국만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할 때

어찌하여 주님은 저를 떠나 계셨습니까?“

 

​ 그러자 주님은 속삭이셨습니다.

“나의 귀한 자녀야.

나는 너를 사랑하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않을 거란다.

네가 가장 큰 시련과 어려움을 당한 그 때에도

결단코 떠나지 않았단다.

네가 한 사람의 발자국만 본 것은

내가 너를 안고 갔기 때문이란다.“

 

그렇습니다. 평상시에 주님은 나와 손을 잡고 걸으며 나와 같이 늘 동행하시지만, 내가 힘들고 어렵고 지치고 위험한 상황에 처하면 친히 나를 업거나 안아 주시며 동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에 대해 다윗은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4)

② 말씀으로 위로하십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미리부터 성경에 위로의 말씀을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때에 따라 그 말씀을 각자에게 주시므로 우리를 위로합니다. 고로 시편 119:50에 다윗은 이런 고백을 합니다.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나를 위로하시고, 내가 그 어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견딜 수 있도록 힘을 줍니다. 성경에 하나님은 분명 말씀합니다.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라.”(사66:13)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니라.”(사51:12) 그러므로 위로가 필요하신 분은 늘 말씀을 묵상하며 그 말씀으로 위로를 받고 힘을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③ 성령님으로 위로하십니다. 성령님을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라고 합니다. 이는 ’곁에 부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즉 성령님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나의 곁에서 나를 돕고 위로하시는 분이십니다. 고로 영어성경은 성령님을 ’Comforter'(위로자)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위로가 실패할 때 성령님은 내 옆에, 내 안에 친히 오셔서 나의 마음에 평안과 위로를 주십니다.

④ 소망으로 위로하십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당하는 고난을 인생의 끝이 아니라, 영광으로 이어지는 과정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로 우리가 절망의 끝에 서더라도 하나님은 미래의 소망으로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십자가의 사건을 보십시오. 십자가는 고통의 극치이지만 하나님은 부활의 소망으로 영원한 위로를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고난과 위로를 분리하지 않고 함께 말씀합니다. 성도는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가지만 십자가에는 고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위로도 함께 있습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그의 삶은 복음을 위해 늘 고난의 십자가를 지는 삶이었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도 갇히고, 매도 많이 맞고, 배고픔도 당하고, 배가 파선하는 바람에 죽음의 고비도 넘겼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계속 오뚝이처럼 일어납니다. 그런 힘이 도대체 어디서 생겼나요? 바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자에게 주는 하나님의 위로 때문입니다. 고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오늘의 본문 5-7절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예하는 자가 된 것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⑤ 사람들을 통해서도 위로하십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크게 낙심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을 위로하려고 한 사람을 그에게 보냈습니다. 이에 대한 바울의 고백입니다.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를 오게 하심으로 우리를 위로하셨도다.”(고후7:6)

하나님은 직접 위로도 하시지만, 사람을 통해서도 위로합니다. 이삭의 어머니 사라가 127세의 나이로 죽었을 때, 외아들 이삭은 어머니와 매우 가까운 관계였기에 큰 상실감을 겪었습니다. 이때 아버지 아브라함은 아들이 어머니를 잃고 상실의 아픔을 심히 겪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그에게 아름다운 여인 리브가를 아내로 구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아내 리브가를 얻게 된 이삭은 크게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모친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모친 상사 후에 큰 위로를 얻었더라.”(창24:67)

이 말씀을 보면서 제가 이런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에 이삭처럼 아직 결혼하지 못한 노총각들이 있는데 이들에게도 리브가 같은 아내를 주어 위로를 받게 하시옵소서.” 아멘! 아- 미안합니다. 제가 큰 실수했습니다. 기도에 덧붙입니다. ”노처녀에게도 좋은 남편을 주어 크게 위로 받게 하시옵소서.“ 아멘!

하나님은 좋은 아내와 좋은 남편을 통해 위로해주기도 하시고, 때로는 위로의 사람을 만나서 위로 받게도 합니다. 초대교회 때에 보면 위로의 은사를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원래 ‘요셉‘이었지만 사람들이 그를 ’바나바‘라고 불렀습니다. ’바나바‘의 뜻은 ’위로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이런 위로의 사람이 있었기에 초대교회는 부드럽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위로를 얻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간단히 알아보려고 합니다. ① 힘들고 고단하고 낙심되고 지칠 때에 핸드폰을 잡기 전에 위로의 말씀인 성경을 먼저 붙드십시오. ② 사람을 찾아가기 전에 하나남께 먼저 기도하십시오. ③ 세상 쾌락으로 나의 마음을 달래기 전에 성령님의 위로를 먼저 구하십시오.

④ 바나바처럼 남을 위로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남을 위로하며 위로를 심으면 자신도 슬프고 힘들 때 위로를 받게 됩니다. 결론입니다. 외국 땅에서의 이민 생활은 참으로 힘이 듭니다. 이때 하나님의 큰 위로로 말미암아 계속 새 힘을 얻고 믿음의 전진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을 또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혹시 저희들이 과거에 알게 모르게 남을 위로하지 못하고 낙심시킨 것이 있으면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을 위로의 사람으로 만들어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