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날짜: 
2025/09/07
말씀: 
마11:12
말씀구절: 

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설교: 

성도님들마다 교회 다니는 목적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중 많은 분들이 안식과 평안을 얻으려고 교회에 다닙니다. 그런데 교회는 천사들만 모인 곳이 아니라, 여전히 불완전하고 타락한 인간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 사이에서 안식과 평안을 얻지 못하고, 도리어 불안과 함께 기분이 안 좋아질 가능성이 다분히 있습니다.

이때 믿음이 좋은 사람, 믿음이 강한 분들은 사람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래도 교회를 계속 다니게 되는데, 반면 믿음이 약한 분들은 시험에 들고, 실족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즉 교회 다니는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 믿는 것을 중단하는 겁니다. 이렇게 실족하는 것에 대해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트리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마18:6-7)

이 말씀에 따라 목회를 하는 목사님들이 가장 신경을 쓰고 기도하는 것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성도님들이 시험에 들어 교회에 못 나오는 것, 즉 실족케 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합니다. 혹시 이 자리에 실족하려고 마음먹은 분이 있지는 않습니까? 생각 속에 “아- 교회 다니는 것이 힘들고 피곤하다. 이제 교회 그만 다녀볼까?” 하고 갈등하는 분이 있지는 않습니까?

신앙생활 하면서 한번쯤은 그런 생각 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아- 그렇지 않아요? 힘들고 바쁜 외국 생활, 이민 생활을 하면서 교회에 왔는데, 여기서도 스트레스를 받고 기분이 나빠지면 그게 뭐에요? 그러면 안 되잖아요? 저는 우리 교회에 오신 여러분들이 평안을 얻고 기분이 매우 좋아지기를 축원합니다.

같이 한번 따라해 봅시다. “하나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왔습니다. 저를 어루만져 주시옵소서. 저의 상한 마음을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까 이 자리를 빌려 저도 회개하며 하나님과 여러분에게 용서함을 구합니다. 그동안 제가 알게 모르게 여러분을 기분 나쁘게 한 것이 있을 겁니다.

왜 없겠습니까?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꽤 많을 겁니다. 그거 대단히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아- 목사님이 오늘 왜 이러시지? 혹시 돌아가실 때가 가까이 되셨나?” 그럴지도 모르지요. Who knows? 옛날에 한국의 아버지, 한국의 남편들은 자녀들과 아내에게 엄격하고 딱딱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저의 아버님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저의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저의 어머님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여보, 그동안 미안해.” 저의 아버님은 평생에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한 번도 안하시고 사셨는데, 죽기 전에는 “여보, 미안해.”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의 어머님이 참으로 놀라고 신기해 하셨습니다. “저 양반이 왜 그러나? 죽을 때가 가까이 왔나?”

그렇습니다. 죽을 때가 가까이 오니까 그런 말을 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이 말을 해야만 후회가 사라지고, 서로 간의 원한이 풀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혹시 여러분의 남편이나 아내나 혹 자녀들이 “그동안 미안해.”라는 말을 하면 그거 눈여겨봐야 합니다. 혹시 세상 떠날 마지막 말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죽기 전에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바로 이겁니다.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오늘 우리가 살아서 여기에 앉아 있지만 장래일, 내일 일을 누가 압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죽기 전에 인생의 후회나 원한이 생기지 않도록 이 말을 미리부터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같이 한번 따라해 봅시다.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아- 이 말을 하고 나서 “이제 됐다. 그만 죽자.” 하고 꽥- 죽으면 안 됩니다. 같이 따라해 봅시다. “죽기는 왜 죽어. 더 오래 건강하게 살면서,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후회 없이 죽어야지. 그냥 죽으면 어떡해?”

오늘의 본문으로 들어가 봅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개역한글‘에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11:12) 이 구절을 ‘표준 새번역‘으로 하면 이렇습니다. “세례자 요한 때로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힘을 떨치고 있다. 그리고 힘을 쓰는 사람들이 그것을 차지한다.”

이 구절을 ‘현대인의 성경’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침략을 당하고 있다. 그리고 침략하는 사람이 그 나라를 빼앗는다.” 즉 천국을 얻기 위해 힘과 열심을 내야 된다. 적극적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이렇게도 해석을 합니다.

‘공동번역‘입니다.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폭행을 당해 왔다. 그리고 폭행을 쓰는 사람들이 하늘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이 구절을 ‘KJV 흠정역‘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침례자 요한의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하늘의 왕국은 폭력을 당하며 폭력배들이 강제로 그것을 빼앗느니라.” 아- 이거 같은 구절인데 완전히 다르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공부하다 보면 이런 경우가 상당히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성경 해석과 번역의 차이로 인해 가톨릭과 개신교가 나눠지고, 개신교 내에서도 교단과 교파가 나눠지게 됩니다. 혹 어떤 분이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아- 가톨릭은 교단과 교파가 나눠지지 않고 하나라서 보기 좋은데, 왜 개신교는 교단과 교파가 그리 많으냐? 그거 보기가 참 안 좋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우리는 이렇게 말해줍니다. “가톨릭은 성경 해석을 오직 교황청에서만 주관합니다. 고로 그들의 성경해석은 모두가 같습니다. 그러니 나눠질 필요가 없지요. 그러나 개신교는 교단과 교파에 따라 혹은 신학자나 목사에 따라 그 해석이 다를 수 있습니다. 고로 성경해석에 따라서 교단과 교파가 나눠지게 됩니다.”

혹 어떤 분은 우리 교회에 와서 이런 질문을 합니다. “왜 여기 교회는 평신도들끼리 성경공부 하는 시간이 없어요?” 이에 대한 저의 답변입니다. “저희 교회도 이전에 평신도들끼리 성경 공부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서 나오는 ‘구역성경공과’나 기타 다른 교제를 가지고 평신도들끼리 성경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민 교회는 성도님들의 출신 교단, 교파, 신학 전통이 제각각이어서 성경공부를 하려고 하면 서로의 해석이 부딪히는 경우가 정말 많이 일어납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이미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순복음 등 다양한 교단이 있지만 해외로 이민 오면 한 교회에 이런 배경의 분들이 한데 모이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이민 교회는 나름대로 교단과 교파가 있지만 어찌 보면 짬뽕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명칭은 ‘순복음’이지만 순복음 교단에서 오신 분들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장로교 출신이고, 다른 교단에서도 오신 분들이 함께 섞여 있습니다.

즉 이민 교회는 다양성이 많은 교회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통일성이 좀 부족합니다. 그러다보니 때로는 성경해석의 차이로 인해 서로 간에 갈등이 일어나고, 때로는 그로 인해 시험에 빠지기도 하고, 분열의 위험도 생기게 됩니다. 더구나 이단 사상을 가지고 있는 분이 들어와 목소리를 높이면 교회가 심히 어려워지게 됩니다.

고로 각 남녀 선교회가 있고 청년부나 중고등부 유초등부 기관이 있지만 평신도들끼리 성경 공부를 시키지 않고 부담 없이 친교나 교재 중심의 모임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공부는 저를 비롯해 각 기관의 목회자가 주관하여 인도합니다. 저의 경우는 나이가 있다 보니 기존의 한국 전통 방식으로 새벽예배, 수요예배, 철야예배 때에 성경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고로 좀 더 성경을 배우기를 원하시는 분이나, 좀 더 기도를 하기 원하시는 분들은 새벽예배, 수요예배, 철야예배를 활용하십시오. 그리고 찬양을 더 많이 하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성가대나 찬양팀에 속하여 하시면 됩니다. 그래도 만족이 안 되면 각자 인공지능이나 온라인으로 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이때 주의할 것은 이단이나 사이비 같은 데에 들어가지 마시고, 혹시 잘 모르시면 저에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오늘의 본문을 좀 더 자세히 살펴봅시다. 세례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이며, 신약의 문을 여는 인물입니다. 세례 요한 이후, 예수님의 사역이 시작되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공개적으로 선포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 선포는 평화로운 것 같았지만, 사실 영적 전쟁을 촉발했습니다.

즉 하늘나라 천국은 사단과 그의 졸개인 귀신들과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에 의해 늘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의 공격은 지금 우리가 사는 여기 캐나다 캘거리에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고로 우리는 천국을 얻기 위해 이 치열한 영적 전투를 계속 수행해야 합니다.

이게 하나의 해석이고, 또 다른 해석은 이렇습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하면서 처음 외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게 뭐지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입니다. 즉 구약시대에는 천국이 멀리 있었지만, 신약시대에는 천국이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이 말을 영어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The kingdom of heaven is at hand.”(손에)(KJV) ”The kingdom of heaven has come near.“(가까이)(NIV) 여러분, 예수님은 천국의 주인입니다. 천국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2000년 전, 인간의 육신을 입고 우리가 사는 이 땅에 가까이 오셨습니다. 고로 예수님은 ‘임마누엘’이십니다. ‘임마누엘’의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다.”(God with us.)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와 가까이 계셨던 예수님이 부활 후 다시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그렇게 천국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떠나셨으니 천국은 또 다시 우리와 아주 멀어진 것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천국에 가면 얼마 후에 또 다른 보혜사인 성령님을 보내어 우리들의 마음 안에 들어오겠다.” 이 약속의 말씀대로 예수님은 50일째 되는 날인 오순절에 드디어 성령님으로 오셨습니다.

그런 의미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못하리니 천국은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 그러니까 천국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이 인격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아예 내 안에 들어오시니까, 그 옛날 2000년 전에 예수님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있을 때보다 더 가까이 우리에게 오시게 되는 겁니다.

그러나 아무리 천국이 나와 가까이 있고,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신다고 해도 내가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치 아니하면 예수님은 내 안에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도둑이나 강도처럼 내가 원하지도 않는데 내 안에 무조건 쳐들어오시는 무뢰한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고상한 인격을 갖추신 분입니다.

고로 우리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여야 내 안에 들어오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의미로 본문에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고 말하는 겁니다. 즉 아무리 진수성찬 밥상을 차려놔도 스스로 믿음의 숟가락, 믿음의 젓가락, 믿음의 포크를 부지런히 움직여 먹어야 한다는 겁니다.

결론입니다. 천국은 뺏고 빼앗는 전쟁입니다. 사생결단 하고 믿어야 합니다. 천국의 행복과 기쁨은 결코 팔짱을 끼고 쳐다만 보는 방관자의 것이 아닙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얻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천국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내 안에 모셔 들이고, 더욱 열심을 내시어 심령천국도 얻으시고, 하늘 천국도 얻으시고, 장차 있을 이 땅의 천국도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기왕이면 이 땅에서도 천국의 평안과 행복을 맛보며, 저 영원한 천국을 확실히 얻기 위하여 날마다 순간마다 부지런히 침노하는 우리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