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 앞으로 나아갔고
37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며
38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
묻고 싶습니다. 교통 신호 잘 지키시는 편입니까? 못 지키는 편입니까? 최근에 혹시 신호 위반으로 딱지 띠신 분 있지는 않습니까? 아- 요즘은 벌금도 올라서 꽤 될 텐데... 삼가 위로와 조의를 표합니다. 옛날에는 이런 경우 법원에 찾아가서 좀 깎아달라고 할 텐데, COVID-19 이후에는 이런 좋은 제도가 거의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물론 내가 신호 위반해서 잘못은 했지만, 없는 살림에 제법 큰돈을 내려니까 매우 화가 납니다. 그러나 아깝지만 할 수 없습니다. 눈물을 머금고 벌금을 내야 합니다. 그러면서 다짐하는 것이 있습니다. “앞으로 조심해야지! 신호 잘 지켜야지!” 그렇습니다. 교통 신호 위반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의미로 오늘의 주제는 ‘인생의 신호등’으로 정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적색(빨간색) 황색(노란색) 녹색(초록색)의 세 가지 색깔의 신호등은 1868년 유엔 빈 협약 때에 생겨났습니다. 그 후 1918년 미국의 자동차 도시인 디트로이트에서 화살표 표시의 녹색등도 생겼습니다. 하나님도 우리의 인생길에 신호등을 두셨습니다.
1. 빨간색 : 멈춰라(Stop)
1996년 한국 TV에 ‘양심 냉장고’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차량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야심한 밤에 신호등이 있는 사거리 혹은 삼거리에서 CCTV를 켜고 숨어서 차량들을 관찰하는 겁니다. 과연 그 밤에 경찰들도 없고, 지나가는 다른 차량들도 없는데 양심적으로 신호를 지키는 운전자가 있을까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신호를 잘 지키는 양심적인 사람에게 냉장고를 선물로 주는 겁니다. 그래서 그 프로 제목이 ‘양심 냉장고’입니다. 우리는 여기 캐나다에서 살다 보니 그런 프로그램이 좀 우습고 이상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저나 여러분들이나 여기 캐나다에서 운전하면서 다들 신호 잘 지킬 겁니다. 누가 보지 않는 새벽이나 밤에도 신호 잘 지킬 겁니다.
그러나 30년 전에 한국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보지 않으면 그냥 신호 무시하고 쌩- 달리는 겁니다. 그 프로가 진행하면서 보니 진짜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 프로를 기획했던 사람들이 낙심하고 그 프로를 중지하고 집에 돌아가려고 하는데... 드디어 나타났습니다. 빨간색 신호를 지키고 서는 차량 한 대가 나타났습니다.
그 프로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반가워서 그 차의 운전자를 취재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그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아- 이 밤에 보는 사람들도 없는데 어떻게 신호를 지키셨습니까?” 그런데 창문을 열고 말을 하는 그 운전자의 말이 어눌했습니다. 순간 담당자들이 느꼈습니다. “아- 이 사람 술 취한 사람인가 보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 차의 남성 운전자는 지체장애자였고, 그 옆에 같이 차를 탄 그의 아내 역시 지체장애자였습니다. 그래서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말을 더듬으며 말을 했던 겁니다. “나.. 는.. 늘.. 신.. 호..를 지켜요.” (사진 한 장 띠어보실래요.) 그리고 그 이야기는 그 다음 날 주요 방송과 언론에 대서특필이 되었습니다. 나주에 교과서에도 실렸습니다. 그 제목은 이렇습니다. “누가 장애인인가?”
즉 빨간 신호등에 서야 할 때에 정상인은 서지 않고, 도리어 장애인이라고 우리가 무시하는 사람이 양심적으로 신호를 지키었다는 겁니다. (이거 동영상으로도 한번 띠어주세요.) 결국 그 장애인 부부는 냉장고도 받고, 사회 각계각층으로부터 이런 저런 선물들을 많이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아- 아깝다. 저 때, 저 장소에 내가 있었으면 저 냉장고 내거였을 텐데...”
여러분, 때로는 하나님이 우리들의 인생길에 빨간색 신호등을 켜실 때가 있습니다. 즉 멈추라는 겁니다. 아- 한국 사람들은 세계에서 빨리빨리 문화가 가장 발달되고, 빠른 서비스를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들인데, 멈추라는 신호는 기분이 매우 나쁩니다. 심히 답답하게 합니다. 일분일초라도 빨리 가야 하는데 멈추라니요.
‘멈추라’는 신호는 도저히 하나님의 신호 같지 않습니다. 나의 앞길을 막는 사단의 저주 같습니다.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사단은 이런저런 일을 일으키고, 우리들의 앞길에 장애물을 놓아서 우리들의 앞길을 막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도 자신의 계획을 따라 우리들의 유익을 위해 종종 우리들을 멈추게 합니다.
달력에 보면 주일 표시를 모두 빨간색으로 표시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에 대해 옛날부터 목사님들이 이런 해석을 붙입니다. “주일의 색깔이 빨간색인 것은 이날이 주님의 날이므로 이날은 세상일을 멈추라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런 해석도 합니다. “자고로 동서고금을 볼 때 주일을 잘 지키는 나라는 번영하고, 주일을 안 지키거나, 주일에 전쟁을 일으킨 날들은 모두 망했습니다. 히틀러는 1813년 10월 17일 주일에 영국을 침공하였다가 웰링턴에게 망했고, 일본은 1941년 12월 8일 주일에 미국을 침공했다가 원폭으로 망했으며, 북한의 김일성은 1950년 6월 25일 주일에 남침했다가 폭탄세례를 받고 망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에 어머니를 따라 집 앞에 있는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러나 당시 주일예배를 빠지고 친구들하고 놀러가려고 하면 어머니가 말합니다. “애야, 주일예배 빠지고 가면 안 된다. 신상에 안 좋다. 주일예배는 꼭 드리고 가야 한다.” 그러나 그런 어머니의 말을 싹- 무시하고 주일예배를 빠지고 놀러갔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 그렇게 주일예배를 빠지고 놀러 가면 꼭 안 좋은 일들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불평합니다. “아- 어머니가 재수 없게 주일예배 빠지면 안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해서 재수가 없었잖아요. 나쁜 일이 생겼잖아요.” 그런데 나중에 성경을 보니까 주일에 예배 빠지면 안 좋다고 이미 성경에 예언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말은 어머니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맞습니다. 주일에 교회는 안 오고 세상 일로 분주한 사람은 빨간색 신호를 위반한 사람과 같습니다. 그렇게 스톱 신호 위반하면 결국 큰 사고와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나중에 벌금 딱지가 날아옵니다. 고로 빨간색 신호등에는 아무리 바빠도 무조건 정지하는 것이 자기 신상에 좋습니다.
성경에 보면 모세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가 나이 40세가 되어 자신의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만 애급 사람을 죽이고 미디안 광야로 황급히 도망을 가야만 했습니다. 왜 하나님은 그때 모세를 쓰지 않고 그를 멈추었을까요? 다름 아닌 아직 하나님의 때가 안 되었고, 모세가 스스로 잘난 것 같았고, 다 된 것 같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아직 훈련이 덜 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모세는 거친 광야에서 40년 동안 목자로 생활하며 어느덧 머리가 희어져 80살이라는 노인이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지나간 광야 40년의 인생은 그에게 잃어버린 시간이었고, 시간낭비, 세월낭비 같았습니다. 모세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의 자기를 완전히 잊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이와 같이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를 멈추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멈춤의 시간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모세는 40년간 멈춤의 긴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40년은 후퇴가 아닙니다. 실패도 아닙니다. 도리어 성숙의 시간이요, 재정비와 회복의 시간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지금 인생의 빨간색 신호등이 켜진 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멈추십시오. 그리고 초록색 신호등이 올 때를 기다리십시오.
2. 초록색 : 가라(Go)
운전하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신호등 앞에 지나갈 때에 때마침 신호가 초록색으로 계속 바뀌면 기분이 참 좋습니다. 저희 집이 다운타운에서 볼 때 서쪽인 쿠거리지(Cougar Ridge) 동네인데 보우 트레일(Bow Trail)을 따라 다운타운에 들어설 때면 바로 이 구간이 나옵니다. 권장속도인 시속 50Km로 가면 계속 초록색 신호로 바뀝니다. 캘거리 시에서 원활한 교통을 위해 그렇게 미리 세팅해놓은 겁니다.
하나님도 우리의 인생길을 이렇게 미리 세팅해 놓는 구간이 각자가 있을 겁니다. 이때에는 의심하지 말고, 주저하지 말고 통과하면 됩니다. 아- 기분이 참 좋습니다. 이때는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시는 것이 확실히 느껴지고, 하나님이 나를 굉장히 사랑하시는 것 같아 매우 만족, 매우 행복, 룰루라라, 할렐루야입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을 탈출하여 홍해 앞에 다다랐는데 뒤에서 애급 군대가 다시 추격해 옵니다. 아- 큰일 났습니다. 뒤로 가지도 못하고, 앞으로 가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광야에서 다 죽게 생겼습니다. 그러나 이때 하나님이 홍해를 갈랐습니다.
세상에- 홍해에 넓은 고속도로가 생겨났습니다. 즉 빨간색 신호등이 드디어 초록색 신호등으로 바뀐 겁니다. 이게 꿈인지 생신지! 수백만 이스라엘 사람들과 가축들이 무사히 바다 속을 통과했습니다. 그 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기적의 대로입니다.
그러나 애급 사람들은 자신들도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홍해를 건널 수 있다고 생각하고 물에 들어갔지만 결국 모두 물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에게는 초록색 신호등이 켜졌지만, 애급 사람들이 건널 때에는 다시 빨간색 신호등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즉 누구에게는 하나님이 전진하라는 초록색 신호등을 주시지만, 누구에게는 빨간색 멈춤의 신호등을 주시는 겁니다.
우리가 운전을 할 때도 그렇습니다. 앞차들이 간다고 나도 뒤에서 속도를 내고 무심코 따라가다가 그만 신호가 빨간색으로 바뀌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는 안타깝지만 신속히 멈춰야만 합니다. 남이 간다고 나도 뒤따라가면 안 됩니다. 반면 남들은 안 가도 나는 가야만 할 때가 있습니다.
밤중에 예수님이 풍랑 이는 바다 위를 걸어오셨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말합니다.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마14:28)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오라.” 이렇게 예수님이 오라고 초록색 신호등을 켜시면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신호를 따라 담대히 앞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물론 바다 위를 오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성적으로 도저히 맞지 않습니다. 의심이 많이 갑니다. 물에 빠져 죽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초록색 신호를 주시는데도 앞으로 가지 않으면 그것도 신호위반이요, 불순종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실 때도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즉 예수님이 그들에게 오라고 초록색 신호를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은 모두 생업이 바쁜 사람들입니다. 나중에 천천히 가야할 이유가 많이 있습니다. 혹은 그 부름에 못가는 이유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운전자 여러분, 운전을 하다가 교차로에서 초록색 신호가 켜졌는데 안가면 그것도 신호위반입니다.
초록색 신호가 켜지면 가야 합니다. 즉 주님이 우리를 향해 오라고 하고, 가라고 하시면 일단 순종을 해야 합니다. 움직여야 합니다. 주님이 허락한 인생의 초록색 신호등이 날마다 켜지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나의 앞길이 다 보이지 않아도, 주님이 오라고 하고, 가라고 하면 이에 따라야 합니다.
3. 노란색 : 조심해(Be Careful)
운전자 분들 중에 이 노란색 신호를 초록색 신호 즉 가라는 신호로 착각하시는 분들이 제법 있습니다. 아닙니다. 정확히 따지면 이 노란색 신호가 켜졌을 때에 차량이 이미 교차로 안에 들어왔을 때는 신속히 교차로 밖으로 빠져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 노란색 신호가 켜졌을 때에 교차로 안으로 진입하면 안 됩니다. 맞지요? 당연하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이것을 착각하여 노란색 신호에 앞으로 가다가 그만 큰 충돌사고가 많이 납니다. 이로 인해 한국에서 큰 교통사고가 나서 법정공방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대법원에서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어떻게요? 노란색 신호등에 교차로에 진입한 차가 신호위반으로 걸렸습니다.
그러니까 노란색 신호등은 상황에 따라 각각 다른 의미가 있으니 잘 판단하고 생각하라는 겁니다. 사무엘상 24장에 보면 다윗은 자기를 계속해서 죽이려고 하는 원수 사울 왕을 죽일 절호의 기회가 생겼습니다. 다윗의 부하들이 절호의 기회가 왔으니 사울 왕을 죽이자고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 왕에게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치는 것을 하나님이 금하시기 때문입니다. 즉 이것은 초록색 신호인 것 같았지만 실은 노란색 신호였습니다. 이를 초록색 신호로 착각하여 행동하면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수 있습니다. 고로 인생의 중요한 갈림 길에는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여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입니다.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 앞으로 발행하였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발행하지 아니하였으며,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서 친히 보았더라.”(출40:36-38)
하나님은 출애급하여 광야로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밤에는 불기둥과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신호등을 삼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신호등의 신호에 따라 멈추기도 하고, 출발하기도 합니다. 우리들의 인생길에도 하나님의 신호등이 있습니다. 이 신호등은 나의 앞길을 막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의 수단입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신호등을 두고 말씀합니다. 빨간색 : 멈춰라(Stop), 초록색 : 나아가라(Go), 노란색 : 조심해라(Be careful) 아무쪼록 이 신호등의 색깔을 잘 바라보고, 멈출 때 멈추시고, 주의할 때 주의하시고, 전진할 때 전진하시며 주님과 계속 동행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당신께서 두신 인생의 신호등에 잘 따르게 하시옵소서. 이곳 캐나다에서도 잘 따르게 하시옵소서. 멈춰야 할 때 멈추고, 나아가야 할 때 속도와 방향을 잘 맞추어 나아가고, 좀 더 주의하고 생각해야 할 때에 기도하며 잘 생각하게 하시옵소서. 그래서 인생의 가는 길에 주님과 동행하며 갈 수 있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